뉴스타파 '엄중조치'한다더니, 시정요구 실익이 없다?

방심위 통신소위, '김만배 보도' 삭제·접속차단 대신 서울시에 '신문법 위반' 검토 요청키로

뉴스타파의 ‘김만배 음성파일’ 보도가 허위·조작됐다며 전례 없던 인터넷 언론 심의를 강행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막상 제재 조치를 놓고는 한발 물러섰다. 방심위 통신심의소위원회는 8일 회의를 열고 뉴스타파에 대해 삭제 또는 접속차단 등의 시정요구는 적절치 않다며 관할 지자체에 심의 결과를 통보하고 신문법 위반사항의 검토를 요청키로 결정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9월4일 국회에서 뉴스타파 해당 보도에 대해 “중대범죄행위, 국기문란”이라며 방심위 등에서 “엄중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큰소리친 것에 비교하면 초라한 결말이다. 그러나 위법·위헌 논란에도 불구하고 방심위가 인터넷 언론에 대한 심의를 강행한 사실은 변함이 없고, 방심위가 지자체에 특정 언론의 신문법 위반사항 검토를 요청한 전례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여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현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심위는 이날 회의 직후 보도자료를 내어 “뉴스타파의 인터뷰 내용이 악의적으로 편집·조작된 허위정보임에도 여전히 유통되고 있어 사회혼란 야기 우려 등의 소지가 있고, 올바른 여론 형성을 해야 할 언론이 국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안으로 보았다”면서 “다만, 인터넷 언론사 기사에 대한 첫 통신심의 사례로서, 언론의 자유와 공적 책임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였다”고 이날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인터넷 언론 첫 심의사례, 고육지책으로 꺼내 든 카드가…

방심위는 앞서 지난달 11일 뉴스타파를 통신소위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고 의견진술을 결정한 뒤 보도자료까지 내어 “인터넷 언론사 콘텐츠에 대해 통신심의 대상으로 확대를 추진하기로 한 이후 첫 심의사례”라고 밝혔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권력의 불법적 검열에 굴종하는 선례를 남기지 않겠다”며 출석 의견진술과 서면 진술까지 모두 거부, 3주 만에 열린 회의에서 여권 측 위원들은 “시정요구에 실익이 없다”며 ‘기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제12조에 따르면 방심위가 뉴스타파에 적용한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하는 정보, 즉 ‘유해정보’의 경우 △해당 정보의 삭제 또는 접속차단 △이용자에 대한 이용정지 또는 이용해지 등의 시정요구가 그나마 가능한 제재인데, 이미 인용 보도 등이 다 된 상황에서 의미 없는 조치라고 본 것이다.

이에 여권 위원들은 같은 규정 제12조5호의 ‘그 밖에 필요한 결정’으로 눈을 돌렸다. 앞서 지난달 회의에서 통신심의국장은 기타 가능한 결정으로 △자율규제 강화 권고 △수사 의뢰 등의 전례가 있다고 설명했고, 이번처럼 인터넷 언론사가 대상인 경우엔 ‘관할 지자체에 심의 결과 통보 및 신문법 위반사항 검토 요청’ 정도가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이미 뉴스타파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시정요구 대신 방심위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지자체 요청 정도가 사실상 전부였다. 신문법 제22조에 따라 위반행위 등이 확인될 경우 관할 지자체장은 법원에 신문 등록취소 등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방심위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논란의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서울시가 지난 9월 보도자료를 통해 “뉴스타파의 신문법 위반행위가 있는지 면밀히 살펴볼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어 실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권 측 김우석 위원은 “인터넷 여론이 교란되는 건 막아야 한다”며 “명확히 잘못된 정도는 제재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황우석 위원도 “선거에 혼란을 줬다는 점에서 사회혼란 정보로 본다”며 뉴스타파 관할 지자체인 서울시에 행정 조치를 요청하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황 위원은 “인터넷 언론에 대해 시정요구를 한다는 건 적절치 않고 비례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면서 인터넷 언론도 허위조작 보도를 하면 심의와 제재 대상이라는 류희림 위원장 등의 입장과는 다소 다른 결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대선 사흘 전인 지난해 3월6일 뉴스타파가 공개한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 /뉴스타파 홈페이지

뉴스타파를 비롯해 방심위가 추진 중인 ‘가짜뉴스 심의’에 줄곧 반대해 온 윤성옥 위원은 서울시에 행정 조치를 요청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 뜻을 표했다.

윤 위원은 “대통령실과 방통위에서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방심위 직무에도 없는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만들어서 신고와 접수를 받고, 이제 와서 실효성이 없다 해서 지자체에 언론사 등록을 취소해 달라고 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윤 위원은 “우리는 독립기구이고, 내용규제를 하면 된다. 정부와 연결해 조치를 취해달라고 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서울시에 대한 요구 역시 실효성이 없으므로 각하를 결정하는 게 적합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하루속히 폐지해야 하고, 가짜뉴스를 내세워 사회질서 위반 정보라는 이유로 대통령의 (검사 시절) 수사 무마 의혹 정보를 접속차단하겠다는 발상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우석 위원, 뉴스타파에 “반성과 숙고 쉼없이 해야” 훈계

한편 김우석 위원은 이날 발언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뉴스타파 측이 방심위에 서면진술서 대신 보낸 입장문을 반박했다. 김 위원은 “‘권력의 불법적 검열에 굴종하는 선례를 남기지 않겠다’고 하는데, 유신 시대도 아니고 시대착오적 접근 아닌가”라며 “이 보도가 정당한 취재와 검증을 통해 이뤄진 보도라면 와서 구체적으로 소명하면 되지 않나. 그런데 주장만 하고 소명은 없으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회의 말미에도 방청석에 있는 뉴스타파 기자를 향해 “꼭 전해주길 바란다”고 한 뒤 “지금 대응은 정말 안타깝다. (뉴스타파를) 인용한 언론에서도 반성과 사과를 하고 다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나”라며 “언론의 공정성과 객관성은 스스로 반성하고 숙고하기를 쉼 없이 해야 한다. 그래야 언론 자유를 수호할 수 있다. 너무 방어적으로만 하지 말고 언론으로서의 자유와 책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 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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