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제 전 MBC 사장이 퇴임 후 첫 신간을 냈다. 책 제목은 < MBC를 날리면 >. 이 책엔 해직 언론인이었던 그가 보도국장, 사장이 된 후 회사를 어떻게 정상화시켰는지 그 과정이 생생히 담겨 있다. 특히 ‘어삼시(어차피 3퍼센트 시청률)’라고 자조했던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이 어떻게 6~7%대로 올라섰는지, 신뢰도 1위는 어떻게 달성했는지 그 단계들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물론 미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엔 윤석열 정부 들어 시작된 언론탄압, 그에 맞서 MBC가 어떻게 싸웠는지 그 가시밭길 또한 자세히 수록돼 있다.
지난 2월, 정권의 외압으로부터 MBC를 지키자는 마음으로 사장 연임에 도전했다 실패했던 박 전 사장은 애초 이 같은 책을 낼 생각은 없었다. 환송회 자리에서 후배들이 ‘MBC를 지키는 데 도움이 돼 달라’며 이구동성으로 책을 내라는 제안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한줌이라도 보탬이 될까, 지난 4~5개월간 열심히 책을 썼다. 박 전 사장은 “처음엔 사장 그만두고 조그만 사업 같은 걸 계획했다”며 “다만 후배들 의견을 듣고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아 책을 내게 됐다. 당분간은 원래 하려던 걸 접고 밖에서나마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려 한다”고 말했다.
< MBC를 날리면 >엔 미처 세상에 알리지 못했던 MBC의 여러 속사정이 자세히 담겨 있다. 이를테면 윤석열 대통령이 비속어 발언을 한 날, MBC 보도가 나오기도 전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박 전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던 일화 등이다. 이 밖에도 비속어 보도 이후 MBC 정기 세무조사의 강도가 더욱 높아진 점, MBC ‘스트레이트’가 대통령실에 천공과의 관계를 묻는 질의서를 보낸 후 MBC 기자들의 전용기 탑승 불허 결정이 내려진 점 등이 책에 자세히 쓰여 있다.
박 전 사장은 한편으론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공영성과 경쟁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과정 역시 상세히 서술했다. 박 전 사장은 “지상파 방송이 독점이었던 시절엔 괜찮았을지 몰라도 수많은 경쟁사들이 있는 환경에서 수익을 잘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게다가 공영방송 사장은 아무리 돈을 잘 벌어도 ‘공적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비난을 받는 자리다. 때마다 ‘눈앞의 이익’보다 ‘공영방송의 역할’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려 노력해야 했다”고 말했다.
박 전 사장은 그러나 그 어려움을 뚫고 3년 연속 흑자, 언론사 신뢰도 1위 등 유의미한 성과를 달성했다. 그 중에서도 그는 신뢰도 1위 달성을 가장 큰 업적으로 여긴다. 박 전 사장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계속 신뢰도가 고꾸라졌는데, 보도국장 시절부터 노력해 사장 임기 마지막 해에 결국 신뢰도 1위를 만들었다”며 “한편으론 MBC가 OTT 등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한 것 역시 꽤 보람 있는 일로 생각한다. 유튜브 매출도 연 500억원을 넘겼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는데, 구성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MBC 보도가 정파적이라는 의심은 강한 상황이다. 박 전 사장 역시 이를 의식한 듯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오해를 불식시키려 노력했다. 진보정권이 집권했든 보수정권이 집권했든 MBC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중심으로 보도했다는 것이다. 박 전 사장은 “구성원들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인권, 평화, 환경 등 진보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경향은 있지만 이 기조는 정권이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었다”며 “예를 들어 MBC는 노무현 정권의 영웅이었던 황우석 박사의 사기극을 밝혀내기도 했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 유족의 목소리를 더 많이 전하고, 4대강 사업의 환경파괴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위험성을 열심히 취재하는 것 역시 그 일환”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MBC를 ‘좌파 언론’으로 매도하고 맘에 안 드는 보도엔 ‘가짜뉴스’ 딱지를 붙이며 갈수록 MBC를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박 전 사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땐 최소한의 금도는 지켰다. 이렇게까지 모든 공권력을 동원해 전 방위적인 압력을 가하진 않았다”며 “무도하다는 말이 딱 맞다. 도가 없다”고 말했다. 그 역시 명예훼손, 배임 등 다양한 혐의로 수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고, MBC 제3노조를 탄압했다는 혐의와 관련해선 기소까지 됐다.
그래서인지 그는 다시금 해직 언론인이 된 기분이라고 했다. 거리의 언론인이 되어 거친 풍파에 맞설 후배들과 연대할 때라고도 했다. 박 전 사장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MBC 경영진이 모두 처벌받아서, 이번엔 그렇게 못할 것”이라며 “정신만 바짝 차리면 좀 고생하더라도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쫄지 말자고 제가 항상 얘기합니다. 쫄지 말고 영리하고 끈질기게 싸우면 금방 지나갈 거라고요. 중요한 것은 국민들에게 되찾은 사랑, 그 신뢰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입니다. 어렵지만,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