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정부에 쓴소리 할 수 있나

[이슈 인사이드 | 경제] 김익환 한국경제신문 기자

김익환 한국경제신문 기자

“A그룹 회장은 정권 실세가 밀어준대요. 다른 실세와 연이 닿는 B그룹 회장도 급부상하고 있고요.”


올해 초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차기 회장 후보를 놓고 여러 풍문이 돌았다. 후보들이 정권 실세와 얼마나 밀접한지가 소문의 골자였다. 후보들이 재계의 신망을 얼마만큼 받는지 등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전경련은 최근 수년 동안 정경유착의 상징으로 통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기업들에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출연금을 강요한 영향이 컸다. 2016년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4대 그룹은 이 같은 이유로 전경련에서 탈퇴했다.


최근에도 의아한 일이 벌어졌다. 올해 2월 김병준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뜬금없이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 자리를 맡았다. 여당과 대선 캠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몸담았던 사람이 뜬금없이 전경련 살림을 맡겠다고 나타난 것이다. 그의 등장을 놓고 “대통령실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재계의 평가가 많았다.


전경련은 최근 부정적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 새 단장에 나섰다. 한국경제인협회로 이름을 바꾸고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신임 회장으로 선임한다고 지난 22일 발표했다.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4대 그룹 계열사도 7년 만에 회원사로 재합류하기로 결정했다. 류 회장과 전경련은 새 출발과 함께 정경유착 고리를 근절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재계는 여전히 미심쩍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재가입을 결정한 4대 그룹 계열사 일부는 “정경유착 등 불법 행위가 있으면 즉시 전경련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했다. 삼성증권은 이사회 반대를 이유로 전경련에 가입하지 않기로 했다. 재계가 이처럼 머뭇거리는 것은 곳곳에 정경유착 징후가 포착되고 있어서다.


김병준 전 대행의 처리 문제가 대표적이다. 그는 앞으로도 고문으로서 전경련 활동에 관여할 전망이다. 전경련의 이 같은 처신을 놓고 재계의 불만의 목소리도 커졌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이 지난 23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어떤 경우든, 누구든 정경유착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인적 구성원은 다 (전경련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유독 대통령실 앞에서 목소리가 작아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출연금 문제도 박근혜 정권 시절 청와대에 끌려다니다 빚어진 일이다.


올해부터 이어진 대통령의 해외 순방단 구성 작업 때도 비슷한 징후가 포착됐다. 대통령 해외 순방길마다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동행했다. 대기업 총수 출장단 구성은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단체들이 돌아가면서 맡았다. 잦은 순방에 피곤한 기색을 보이는 기업들도 적잖았다. 기업 역량이 소모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있다는 불만도 나왔다. 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은 이 같은 기류를 대통령실에 전하지 않아, 번번이 기업들 불만을 샀다. 그 결과 매달 이어진 대통령 순방에는 어김없이 주요 기업 총수들이 동행했다.


전경련은 기업을 대변하는 재계의 이익단체다. 대통령실을 비롯한 정부에 기업의 목소리를 전하는 창구 역할을 해야 한다. 그동안 이 같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여러 의구심을 샀다. 대통령실과 정부의 목소리를 기업에 일방적으로 전파했다는 비판도 많았다. 전경련은 대통령실에 쓴소리를 전달할 만큼의 소신을 갖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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