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해남군청, 그곳에서 차를 타고 서쪽으로 20분을 가면 대로변 근처에 대형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이곳은 언뜻 봐도 무언가 다르다. 여느 비닐하우스와 달리 높이가 8m에 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형은 둘째 이야기, 안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별세계에 온 것 같다. 아열대 작물인 바나나가 비닐하우스를 빼곡히 채우고 있어서다. ‘엣지해남’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바나나 농장의 운영자는 바로 오영상 대표. 그는 20여 년간의 언론인 생활을 뒤로 하고 지난 2021년부터 이곳, 해남군 황산면에서 바나나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 농장 한편에서 지난달 26일, 오 대표를 만났다.
이날은 낮 최고기온이 32도에 달하는 무더운 날씨였다. 비닐하우스 내부 온도는 34도까지 치솟아, 선풍기를 틀어도 더운 바람이 나왔다. 오 대표 휴대폰에선 연신 경고음이 울렸다. 35도 이상이 되면 바나나가 성장을 멈추기 때문이다. 바나나의 생육 조건은 까다롭다. 27도 정도에선 잘 성장하지만 35도 이상, 18도 이하에선 성장을 멈추고 13도 이하에선 동해를 입는다. 오 대표는 이를 위해 하우스 안팎에 센서와 카메라, 기상관측시설을 두고 온도, 습도, 지습, 풍향, 풍속 등 환경을 측정·제어하고 있다. 오 대표는 “꼭 게임 중독된 사람처럼 수시로, 자다가도 일어나서 수치들을 본다”며 “스마트팜 형식으로 운영을 하지만 환경을 온전히 다 못 맞추는 경우들이 있고, 또 비용 절감을 위해 수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사에 익숙해 보이는 그는 천생 농부처럼 보이지만 실은 오랫동안 기자로서 살아왔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일도일사(一道一社)’ 원칙이 무너지며 창간 바람이 불던 때, 그는 전남일보 1기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다. 1991년엔 창간 추진위원이 되며 광주매일로 자리를 옮겼고, 2001년까지 10여 년간 일하며 사진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엔 스포츠 매체인 굿데이신문에서 광주 주재기자로, 또 군민들 참여로 창간된 해남신문에서 편집국장으로 근무했다. 국립공원공단이나 전라남도문화관광재단에서 각각 홍보담당관, 사무처장으로 일한 시절도 있다. “그럼에도 당신 직업 뭐였어, 물어보면 전 망설임 없이 기자였다고 생각해요. 성공적인 기자 생활은 아니었다고 보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았거든요. 소명의식을 갖고, 내 젊음을 바쳐 사진기자로 살았어요.”
그 소중했던 기자 생활을 접고 귀농한 건 아버지의 영향 덕분이었을 것이다. “미친 놈” 소리 들으며 독하게 농사를 지어 자식들을 전부 광주로 ‘유학’ 보낸 아버지는 힘들게 공부시킨 자식들이 농사짓는 걸 반대했지만, 아들이 산 넓은 땅을 보고선 결국 눈물을 보였다. “평수에 놀라셨어요. 당신은 자식들 가르치느라 갖고 있던 것도 싹 팔았는데 아들이 갑자기 땅을 샀다고 하니까. 그 돈 은행에 놔두지 뭔 고생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지만(웃음) 저도 목표가 있었죠.”
그 목표는 부지에 체험학습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지난 2010년, 아내 퇴직금을 중간정산 받아 본가와 19km 떨어진 곳에 땅을 샀다. 원래는 오디, 블루베리 등 과실류를 심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체험학습장을 조성하려 했다. 숲 해설가 자격증과 굴착기 면허도 땄다. 다만 귀농 일정이 미뤄지고 체험학습장 조성만으론 부족하다고 느끼던 찰나, 해남군에서 바나나 재배 확대를 위한 시범사업을 공모하면서 바나나와 인연을 맺게 됐다. “원래는 신청서를 넣었는데 농사 경력이 부족해서인지 떨어졌어요. 그런데 선정된 농가 한 곳이 자부담을 입금시킬 수 없는 형편이었나 봐요. 뒤늦게 당신 할 생각이 있느냐, 연락이 왔는데 안 할 이유가 없었죠. 그래서 시설 공사가 늦게 들어갔습니다.”
비닐하우스는 5개월간의 공사 끝에 2020년 말, 3연동으로 지어졌다. 길이만 85m인, 617평 넓이의 대형 하우스였다. 이후 그는 제주도에서 조직 배양한 모종 500그루를 가져와 2021년 1월, 바나나를 식재했다. 첫 수확은 약 1년 뒤인 이듬해 1월 시작됐다. 다만 판로 확보에 애를 먹으면서 수확기가 길어져 1차 수확을 지난해 6월에야 끝내고 2차 수확을 그해 말부터 시작했다. 현재는 2차 수확물의 10% 정도가 남은 상황이다. “판로만 해결되면 3개월 동안 딱 수확해 털어버리면 되는데, 이상하게 꼬여서 1년 내내 수확하게 생겼어요. 나무마다 수확하는 시기가 달라져 유치원생과 대학생이 같이 열려 있는 상황이에요. 이제부턴 3차 수확이라 마무리하고 전면 바꾸려고요. 바나나는 나무가 아니라 파초, 즉 풀인데 3차까지만 수확하고 모종을 바꿔줍니다.”
첫 농사에 시행착오는 많았지만 그는 훌륭한 결실을 맺기도 했다. 바로 좋은 바나나 품질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엣지해남의 바나나는 유독 굵다. 컨테이너 선박으로 옮기는 과정을 고려해 일찍 수확하는 수입산과 달리 그의 바나나는 살찌는 비대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어른 팔뚝 수준으로 커지기도 한다. 바나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이 풀려 둥글둥글해지는게 특징이고, 맛도 찰지다. 1개 무게는 대략 250~300g. 게다가 까다로운 무농약 기준까지 지키고 있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힘든 무농약 기준을 고수하는 이유는 가격 경쟁 때문도 있다. 엣지해남 바나나의 가격은 kg당 8000원에서 1만원. 3000~4000원 수준인 수입산보다 2~2.5배는 비싸다. 무농약으로 차별화를 주지 않으면 사실상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오 대표는 “학교 급식이나 이유식 등으로 판로를 확보하고 있다”며 “한편으론 맛을 완벽하게 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실천하고 있다. 무농약인데도 한 번 더 물 세척을 하고, 클레임이 들어와도 배송 과정에 문제가 있구나 싶어 재배송을 해주면서 모니터링을 한다”고 말했다.
바나나 농사가 안정화에 접어들면서 그는 애초 목표로 했던 체험학습장도 인근에 마련할 계획이다. 이미 사무실, 화장실, 시청각 시설이 들어갈 수 있도록 30평 규모로 설계를 마쳤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다. “판로 확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고 농장 홍보를 위해 인스타그램, 유튜브 운영도 하고 있어요. 농장에 커피, 올리브, 파인애플도 심어뒀는데, 가능하다면 작목 변경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농사로 성공하기엔 택도 없는 기간이지만 반드시 성공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