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박물관

[이슈 인사이드 | 문화] 이소연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이소연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만지지 말라’는 말은 제게 ‘오지 말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전맹(全盲) 시각장애인이자 서울 맹학교 교사인 이진석씨(44)는 “‘유물에 손대지 말라’는 박물관의 금기가 시각장애인에게는 넘을 수 없는 진입장벽”이라고 말했다. 촉각으로 세상을 보는 그는 박물관을 ‘차가운 공간’으로 보고 있었다. 손을 뻗어 유물에 다가가면 가장 먼저 차가운 유리 진열장이 그에게 닿았다. 2021년 11월 개관 이후 현재까지 약 100만명이 찾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 역시 그에게는 와 닿지 않았다. 두 점의 반가사유상(각각 국보 78호·83호) 앞에 둘러쳐진 진입제한선이 그가 유물과 손끝으로 만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재활복지공학회 논문지에 발표된 ‘시각장애인의 문화예술전시공간 내 이동 접근성 요구 분석’ 논문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의 문화예술관람 참여율은 9.5%뿐이다. 장애인의 문화생활 만족도는 7.6%에 그친다. 이씨는 서울 맹학교 학생들이 가장 기피하는 현장학습 장소 1~3위로 박물관, 미술관, 수족관을 꼽았다. 모두 차가운 유리가 관람자를 가로막고 있는 공간들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올해 9월 개관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상설전시실 ‘오감’은 바로 이 같은 자성에서 출발했다. ‘유물을 만지지 말라’는 박물관의 금기를 깼다. 박물관 1층에 157.54㎡ 규모로 조성된 전시실에는 크기가 다채로운 ‘반가사유상’ 모형 30점이 전시돼 있다. 아주 작은 미니어처부터 실물과 똑같은 크기의 반가사유상까지 시각장애인들이 마음껏 손끝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게 한 것. 국립 박물관 중 시각장애인을 위해 상설전시실을 마련한 건 국립중앙박물관이 최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발달장애 아동·청소년뿐 아니라 가족까지 미술관 안으로 끌어들였다. 2017년부터 ‘어떤 감각’이라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발달장애인 가족이 미술관을 온몸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미술관 곳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체험활동부터 작품 창작활동까지 온 가족이 한 팀으로 참여하는 식이다. 해당 프로그램을 기획해 운영하는 홍해지 국립현대미술관 교육전문가는 “발달장애 아이를 전적으로 돌보는 삶을 살아온 가족들 역시 문화 경험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장애를 가진 한 사람뿐 아니라 그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까지 미술관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장애인을 위해 문턱을 낮춘 박물관과 미술관은 비(非)장애인에게도 또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넓혀준다. 지난달 20일 개관을 앞두고 준비가 한창인 국립중앙박물관의 오감 전시실을 시각장애인 이씨와 함께 찾았을 때였다. 손끝으로 실물 크기 반가사유상 2점(국보 78호·83호)을 느끼던 이씨가 내게 옅은 미소를 보이며 “두 반가사유상 입가의 미소가 같은 것 같아도 실은 다르다”고 말했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의 발끝엔 힘이 들어가 하늘을 향해 솟구친 반면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은 발끝이 평평하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그는 “발끝에 힘을 주고 있는 반가사유상은 지금 확신의 미소를 짓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두 눈으로 반가사유상을 만났던 나는 볼 수 없었던 차이였다. 그의 말을 듣고 손끝 감각으로 반가사유상을 다시 보니 그제야 그 차이가 느껴졌다. “두 눈으로 보고도 여태 이 차이를 몰랐다”는 나의 말에 이씨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때로는 다른 감각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세상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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