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낸데'를 버려야 할 때

[이슈 인사이드 | 스포츠]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이승엽 감독은 올해 처음 지도자로 발을 뗐다. 2017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은퇴한 뒤 방송해설위원만 했던 그다. 그동안 프로 코치 경험조차 없었다. 삼성이 아닌 두산과의 첫 동행도 낯설었다. 그런데, 베어스 구단 최다 연승 신기록(11연승)을 세웠다. KBO리그 역대 감독 데뷔 시즌 최다 연승 타이기록은 덤이다.


두산은 현재 치열하게 중위권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전년도 9위 팀이 반등에 성공했다. 시즌 전에는 하위권 팀으로 분류됐던 두산이었다. 포수 양의지 재영입 효과만으로 지금의 성적을 설명할 수는 없다.


이승엽 감독은 두산의 순항을 주변 사람 덕으로 돌린다. 이례적으로 프로 감독 출신을 수석코치(김한수 전 삼성 감독)로 앉힌 그는 “지도자로 경험이 없기 때문에 투수교체나 작전, 타이밍 싸움에서 미숙한 게 많다”라며 “실수하면 다음 날 야구장에서 코칭 스태프와 경기를 복기하면서 조금씩 개선해가는 과정을 거친다. 실수를 인정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더불어 “코치나 선수, 프런트 모두에게 감독이 아니라 함께하는 동반자로 어떤 얘기라도 망설이지 말고 해달라고 말한다”라고도 했다. ‘초보 감독’이자 ‘초보 지도자’인 그는 감독이나 지도자가 아닌 ‘초보’에 방점을 찍고 자신을 낮춘다.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 관계에서 많은 대화를 통해 합리적 길을 도모한다.


이러한 방향성은 일본에서의 경험에서 비롯한다. 그는 아시아 최다 홈런 신기록(56개·2003년)을 세우고 일본으로 건너가 요미우리 자이언츠 4번 타자도 했지만 한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여러 일을 겪었다. 이승엽 감독은 올 시즌 시작 전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8년간 뛰면서 벤치 멤버로도 있었고, 2군에 내려가 힘든 경험도 많이 했다”라면서 “홈런왕으로 한국에만 내내 있었다면 아마 실패를 몰랐을 것이다. 여러 상황에서 벤치에 앉아 경기 작전, 선수 기용 등을 유심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고 선수들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도 있게 됐다”라고 했다.


국내 최고 선수였다가 낯선 땅에서 바닥까지 추락하는 경험 안에서 그의 야구관은 확장됐다. 이 감독은 “자만심으로 똘똘 뭉쳐 일본에 갔었는데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야구에 대한 예의가 생겼다. 일본에서 실패했던 경험을 지도자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가져가면 좋은 효과가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여느 스타 선수 출신 감독과는 다른 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승엽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내가 낸데’(내가 이승엽인데) 하고 플레이하면 안 된다”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홈런왕에 올랐던 과거와 똑같은 타격 폼으로 현재의 다른 투수, 다른 투구폼으로 날아오는 공을 때려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늘 배움의 자세에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초보’라는 사실보다는 ‘직’에 따라오는 권한만 강조하는 이들이 있다. 자존심 때문에 초보라면 당연한 서투름을 애써 감추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눈 감고, 귀 닫은 초보만큼 위험한 이도 없다. 삶의 반경 안에서 최고의 위치에만 있던 사람이라면 더욱. 프랜차이즈 출신 스포츠 스타가 지도자로 실패하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내가 낸데’를 버려야 하는 이들이 비단 스포츠 선수, 감독뿐일까. 겸손이 사라지는 시대, 이승엽을 다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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