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 분리징수에서 '시일야방송대곡'을 떠올린다

[기고] 이균형 전북 CBS 보도제작국장

이균형 전북CBS 보도제작국장이 수신료 분리징수와 관련해 KBS 기자들에게 당부하는 기고문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가당찮게 필자가 간혹 ‘언론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특강을 할 때마다 써먹는 문구가 있다. “저널리스트(journalist)가 될 것인가, 저널트래쉬(journaltrash)가 될 것인가?” 그런데 ‘저널트래쉬’라는 말은 필자가 갖다 붙여 만든 ‘신조어’로 처음 들었을 텐데도 수강생들은 곧잘 그 뜻을 알아맞힌다. 기자와 쓰레기가 버무려진 ‘기레기’라고. 그런데 언론인으로서는 죽기보다도 더 듣기 싫은 이 말이 언젠가부터 기사 댓글마다에 기자를 호칭하는 접두사가 돼 버렸다.

뉴시스

‘국민의 방송’이라는 자부심으로 달려온 KBS에선 요즘 소리 없는 통곡이 그치질 않는다고 한다. 수신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TV가 없는 국민, 또 TV가 있어도 KBS를 보지 않는다는 국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민원 해결에 나선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이 정권이 국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분리 징수’를 밀어붙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역대 정권을 훑어보면 국정을 이끌어감에 있어 언론을 상대로 치적은 과대 포장하고 비판은 무마 삭제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누가 정권을 잡든 이 같은 정권의 언론에 대한 구애(求愛)는 일견 당연지사다. 그런데 지금의 KBS 수신료 분리 징수는 결이 다르다. 이는 구애는 물론 스토킹 수준을 훨씬 넘어선 것으로, 과거 군부독재의 ‘군홧발’을 작금의 ‘징숫발’로 대체한 듯하다.

필자와 같은 586세대, ‘꼰대’들이 기억하는 뉴스가 있다. 그렇다. 바로 ‘땡전 뉴스’, ‘뚜뚜전 뉴스’다. 바로 그 ‘땡전 뉴스’가 시청료 분리징수라는 단어 속에 오버랩되는 것은 필자만의 ‘괴담’일까? 권력에 대한 비리 의혹과 비판을 제기하고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우리는 ‘언론의 공기능’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정권은 이런 모든 불편한 지적을 싸잡아 ‘반국가 세력’이고 끝장내야 할 ‘좌파 언론’이며 나아가 ‘부패 카르텔’로 읽는 모양이다. 이제 ‘공영방송’ 간판은 내리고 ‘윤’영방송을 만들어야 할 형국인 듯하다.

그런데 어쩌랴, KBS로서는 헌법소원으로 맞서곤 있지만 당장은 살아 있는 권력의 힘 앞에 ‘비상 경영 조치’로 무너져 내리는 모습 외에 이렇다 할 대안이 없어 보인다. 분리 징수에 따른 막대한 재원부터, 반 토막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징수율 등으로 경영에 치명타를 입을 것이 뻔한 KBS로선 그야말로 곡소리가 날 밖에…. 그야말로 ‘시일야 방송대곡’(是日也 (KBS) 放送大哭)이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핀잔을 무릅쓰면서까지 왜 필자가 타 방송사 일에 이러쿵저러쿵 ‘오지라퍼’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을까? 같은 언론인으로서 느끼는 공분이 앞섰고 이와 더불어 KBS의 곡소리가 방송 전반에, 그리고 나아가 언론 전반에 울려 퍼질지 모를 것이란 합리적 의심 때문이다. 이미 방송가에는 ‘是日也 (KBS) 放送大哭’의 괄호 안에 ‘00월 대란설’이란 말과 함께 조만간 다른 방송사 명칭이 들어설 것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는 후문이다.

서설이 길었다. 자, KBS 동료와 선·후배께 당부드린다. 일각의 질타를 받아왔던 ‘방만 경영’에 대해서는 새삼 거론하지 않아도 충분한 내부 검토와 그에 따른 대안을 모색하면 될 것이며 편파방송 의혹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마련해 나가면 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권력의 힘 앞에 무릎 꿇는, 국민이 아닌 정권 맞춤형 언론만큼은 단호히 거부하길 바란다. ‘기레기’의 어원이 됐던 ‘세월호 승객 전원 구조’라는 ‘받아쓰기 언론’이 될 순 없지 않은가.

그동안 KBS가 자부해 왔던 국민들의 신뢰도가 지금 이 정권의 처사가 부당함을 웅변하고 있음을 잊지 마시라. 그래서 ‘저널트래쉬’가 아닌 ‘저널리스트’로 남아 주시라. 비록 이후의 KBS는 살림살이가 예전만 못할지라도 어느 영화 속에서 배우 황정민이 내뱉은 대사 한 마디를 읊어주시라. “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KBS, 파이팅!)

이균형 전북 CBS 보도제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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