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안 보니까 돈 안 낼래"… 공영방송 위축, 국민 모두에 손해

분리징수 바라보는 KBS 구성원들

“파업을 수차례 겪었지만 지금 같은 위기감은 처음이다. 잠을 잘 못 자겠다.” “패닉 상태다. 동료들과 밥을 먹으며 얘길 나누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만 남는다.” “추진 됐을 때 조직이나 개개인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TV수신료와 전기요금을 분리징수하는 방송법 시행령이 시행되며 KBS 수신료 수입이 6200억원에서 1000억원대로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복수의 KBS 기자들은 사내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전례 없는 위기 앞에 조직 구성원의 우려는 당연하지만 이 상황은 개개인의 불안, 한 언론사의 재원축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공적 재원을 투입해온 공영방송사의 역할 축소가 명백하고, 이는 결국 국민 모두에 손해를 끼칠 소지가 큰 문제여서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13일부터 헌법재판소 앞에서 수신료 분리고지 시행령 효력정지 인용 촉구를 위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제공


고연차인 KBS A기자는 최근 대학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수신료에 대해 ‘안 봐서 낼 이유가 없을 것 같아’란 말이 나와 장광설을 늘어놨다. “너처럼 많이 배우고 경제적 여력이 있고 정보접근성을 가진 사람들은 KBS가 아니어도 여러 가지를 볼 수 있는데, 사회엔 그러지 못하는 취약한 사람들이 있고, 무시할 수 없는 마이너리티의 니즈가 있거든? ‘아침마당’, ‘가요무대’, ‘전국노래자랑’을 100만명 이상이 본다고. 너가 안 본다고 사회적으로 안 볼 거란 건 착각이란 말야. 실제 1TV 평균 시청률은 실제 모든 채널 통틀어 가장 높고. 공영은 민영이 하기 싫어하는 걸 하는 거니까 KBS가 그걸 하는지 봐달라는 거고. 종편이 안하는 걸 우리가 대신한다고 봐도 되고.”


‘2022 사업연도 KBS 경영평가보고서’에 담긴 지난해 주요 방송사 재난재해 첫 특보 현황을 보면 언급된 역할이 드러난다. ‘울진 산불’, ‘밀양 산불’, ‘수도권 집중호우’, ‘괴산 지진’, ‘이태원 참사’, ‘과천 고속도로 화재’ 등 6건에 대해 KBS는 모두 특보를 실시했다. MBC와 SBS, JTBC는 절반인 3건을, TV조선과 MBN, 채널A는 특보를 하지 않았다. 광고 ‘미방’ 등 손해를 감수하고 특보를 가동할지 말지 언론사는 고려한다.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에선 의무에 가까운 지점이다. B 기자는 “구성원으로서 KBS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상대적으로 가장 독립된 언론이고, 언론 본연 기능에 부족함은 있었지만 구조적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회적 자산이란 측면을 국민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아직 시행되지 않았지만 최근 비상경영 선포와 맞물려 채용 중단, 작가·프리랜서 고용 최소화, 명예퇴직 추진, 프로그램 폐지, 지역KBS 광역화 조치가 거론되는 등 변화는 실감되고 있다. 재원감소는 기존 역할의 축소를 전제한다. C 기자는 “시사제작프로그램들은 이미 제작비 삭감 지시를 받고 예산의 어려움을 체감하고 있다. 올해 적자를 반영했을 뿐인데 향후 몇 천억원이 줄었을 땐 임금삭감이나 고용불안도 자명하다. 대량 이탈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B 기자는 “저연차 기자들에게 취업사기 당했다는 농을 하는 분위기”라며 “보도국에서 특정 예산은 그 분야·방식 취재장려로 이어지는데 차단되면 활동반경이 준다. 하루가 멀다않고 지침이 내려오는데 결국 아무 것도 못하는 무기력한 조직이 될까 겁난다”고 했다.


당장 지역KBS 광역화 등 지역보도 위축이 1순위로 언급된다. D 기자는 “수천억원의 수입감소 대체는 어렵고 지출 줄이기가 우선될 텐데 지역국, 특히 총국보단 을지국이 사라지며 책무가 줄 소지가 크다”며 “안 되면 인력을 손댈 수밖에 없을 텐데 인력부족은 이미 한계에 달한 지 오래”라고 했다. 미래를 겨냥한 실험들도 중단될 가능성이 높은데, 실제 젊은 층을 타깃 삼은 유튜브 채널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은 제작중단 지시를 받았다가 현재 1인 방송으로 운영되고 있다. E 기자는 “얼마 전 디지털 예산 전액삭감 지시가 내려왔다가 30% 축소로 봉합한 것으로 안다. 최악의 경우 ‘오리지널’은 제작을 못할 수도 있다”며 “정말 어려워지면 올림픽 중계는 할 수 있을까. 결국 당장 급해서 나중을 위한 씨감자도 마련치 못하는 게 되는 것”이라 말했다.


정치권의 KBS 장악 시도는 여야를 불문하고 대선 이후 매번 있었고, “사장을 지금 교체할 방법이 그거(수신료) 말곤 없고, 총선을 앞둔 언론 길들이기 행태로 부당하다”(F 기자)는 맥락의 시선이 존재한다. G 기자는 “예전엔 KBS를 내 편으로 만들고 영향력을 발휘하려 했다면 이젠 종편이 있으니 아예 무력화하려는 것”이라며 “민주노총 조합원이 다수인 방송사를 매번 장악하기보다 파괴하는 게 합리적이라 보는 것 아닐까”라고 했다. 지출을 싫어하는 일반 정서, 여러 플랫폼 등장에 따른 영향력 약화 등 KBS만의 탓이 아니지만 정부여당의 ‘시청자 선택권 확대’란 명분에 맞설 효용감을 국민에게 주지 못했다는 반성도 나온다. “좋은 보도와 프로그램으로 인상을 못 남겨 원인제공을 했다는 자책도 든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에 분리징수 시행령과 절차의 부당함을 묻는 KBS의 행보에 대한 제언도 나온다. A 기자는 “KBS 이사 해임, 방송통신위원장 임명 후엔 새 사장이 들어와 헌법소원도 철회할 가능성이 높은데 시행령으로 공영방송을 흔드는 구조가 합법적인지 최고 법적기구 판단을 받아보는 게 필요하다”며 “공영방송의 유용성과 책무를 효율적인 비용으로 달성할 조직에 대한 고민을 사회가 놓쳤는데, KBS 압박용이 아니라 건강한 판을 위해 공영방송 전반 재설계와 재원구조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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