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수사보다 어렵다

[이슈 인사이드 | 노동] 전혜원 시사IN 기자

전혜원 시사IN 기자

윤석열 정부 교육개혁의 윤곽이 드러났다. ‘글로컬 대학 30’도 그 중 하나다. ‘글로벌(global·세계적)’과 ‘로컬(local·지역적)’의 합성어로, 혁신 의지와 역량을 갖춘 비(非)수도권 지역 대학 30곳을 선정해 1곳당 5년간 1000억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배경에는 학령인구 감소가 있다. 대학 입학 가능 인원이 2020년 약 46만명에서 2040년 약 28만명으로 39.1% 줄어든다.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 국립대 입학 정원이 26만명인데 이를 다 채우고 2만명 남는 숫자다. 이대로라면 20년 뒤에 비수도권 사립대는 문을 닫아야 할 처지다.


다 살릴 수 없으니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교육부의 고민은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혁신의 기준이다. 교육부는 ‘대학 간, 대학 내 벽 허물기’를 내세웠다. 대학 간 벽 허물기는 통합이고, 대학 내 벽 허물기는 학과 간 융합, 심지어는 ‘무(無)학과’를 의미한다. 그런데 대학 간 통합이 혁신을 담보할 수 있나? 2006년 부산대-밀양대, 전남대-여수대, 강원대-삼척대 등 국립대 간 통합이 이뤄졌지만 지역 대학의 위기가 해결된 바 없다. 학과 간 벽 허물기라면, 이미 철학과와 사학과가 합쳐져 ‘역사문화콘텐츠학과’가 되는 식의 통폐합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전국 사립대는 278곳, 국공립대는 47곳이다. 글로컬 대학에 선정될 대학은 5년간 30곳에 불과하다. 글로컬 대학은 국립대와 사립대, 4년제와 전문대 간 구분 없이 뽑는다. 지역 안배도 없다. 전문가 22명으로 구성된 ‘글로컬 대학 위원회’가 각 대학들이 낸 5쪽짜리 기획서를 가지고 “철저한 보안”을 위한 “비공개 합숙 평가”를 진행할 뿐이다. 공적 예산이 충분한 합의 없이 밀실 평가로 배분되어도 될까? 균형발전은 헌법에 명시된 국가 원칙이다. ‘지방시대’를 내건 윤석열 정부는 수도권 대학에 반도체학과 정원을 대거 늘렸다. 수도권 대학 정원을 늘린 건 20여년 만이다.


전문가들은 고등교육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한국 대학진학률은 73.3%로 OECD 평균(44%)보다 30%포인트 높다. 그런데도 대졸자가 갈 만한 일자리는 부족하다.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린다. 이 지독한 미스매치는 청년들 눈높이를 낮춰서 풀 수 없다. 제조업에서조차 생산직보다 연구인력이 더 필요해지는 시대다. 한국 사회 2000만 노동자 중에서 대기업에 다니고, 정규직이면서, 노조가 있는 기업에 속한 노동자는 7.2%다. 이들 대기업·정규직·유노조 집단에 비하면, 중소기업·비정규직·무노조 집단의 시간당 임금은 43.9%에 그친다.


‘7.2%’ 성벽 안에 들어갈 확률을 수도권 대학 입학이 결정한다. 문제의 본질은 교육당국과 사교육의 ‘이권 카르텔’이나 지방 국립대 교수의 ‘철밥통’ 따위가 아니라 수도권 대학, 명문대, 나아가서는 의대가 보장하는 초과수익 그 자체에 있다. 이 초과수익이 왜 작동하는지 밝히고 경쟁 결과의 차이를 줄여주는 게 정부가 할 일 아닐까. 교육 개혁은 외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균형발전, 산업정책, 노동시장 개혁과 함께 가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각 분야에 모종의 기득권 카르텔이 있다고 상정하고 수사로 때려잡고 있다. 교육개혁과 노동개혁이 그리는 비전을 연결하고 균형발전과 조화시키려는 문제의식, 그 안에서 4년제와 전문대, 국립대와 사립대의 역할 분담을 논의하는 모습은 잘 안 보인다. 개혁은 수사보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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