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전 벌이는 4대그룹

[이슈 인사이드 | 경제] 김익환 한국경제신문 기자

김익환 한국경제신문 기자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4대 그룹은 끊임없이 경쟁했다. 삼성과 현대는 재계 1, 2위를 놓고 산업화 이후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협업보다는 경쟁·갈등이 많았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선대 때보다 더 치열하게 맞붙었다. 양측의 갈등은 1995년 최고조에 달했다. 삼성이 그해 삼성자동차를 세우면서 현대차가 장악한 자동차 사업에 진출한 영향이다. 삼성자동차가 프랑스 르노닛산에 매각된 뒤에도 앙금은 해소되지 않았다.


양측은 2014년 한국전력의 삼성동 부지 인수전 때도 충돌했다. 서로 인수대금으로 얼마나 쓰는지를 놓고 치열한 정보전을 벌였다. 현대차가 삼성동 부지를 인수한 뒤에도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현대차는 현재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에서만 공급받고 있다. 삼성SDI 배터리를 배제한 것은 과거 신경전에서 비롯했다는 평가가 많다.


SK와 LG는 비교적 최근에 충돌했다. 갈등은 2019년 시작된 인력 유출 논란에서 비롯했다. LG화학(옛 LG에너지솔루션) 직원 100여명이 2017~2019년에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했다. LG 측은 2019년 4월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등에 소송을 제기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에 대해 “근거 없는 의혹 제기”라고 항변했다. 이어 같은 해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맞불을 놨다. 양측은 소송과 함께 여론전과 상호 비방을 이어갔다. 소송비용으로 수천억원을 쓰는 등 상당한 비용과 역량을 소모했다.


양측의 배터리 분쟁은 2021년에나 종식됐다. SK가 LG에 영업비밀 침해에 따른 합의금으로 2조원을 물어주기로 하고 합의했다. 하지만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다. 두 그룹의 사업 교류는 끊어졌다. 배터리 사업은 물론 여타 사업에서도 서로를 철저히 배제했다. 양측의 경력직 이동도 여의치 않다.


한국 기업들은 산업화 과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쌓았다. 그 과정에서 사활을 걸고 경쟁했다. 그만큼 신경전도 치열했다.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당연한 절차로 여겨졌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갈등이 소모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품과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선의의 경쟁보다는 감정싸움만 벌이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중국 등과 벌이는 거센 경쟁에서 맞서야 하는 판국에 한국 업체끼리 다투면서 분열하고 있다. 에너지와 역량이 소모되는 한편 집중력도 흐트러지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사업 협업에 나서면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현대자동차에 자동차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공급할 계획이다. 경쟁하고 갈등했던 두 회사는 그동안 좀처럼 사업적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선대의 구원(舊怨)을 뒤로하고 미래자동차 사업을 위해 손을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래차와 반도체 등의 산업은 한 기업이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기 쉽지 않다. 이들 분야에서 독보적 역량을 쌓은 한국 기업들은 적잖다. 미래를 위해 서로 손잡고 협업해야 할 때다. SK와 LG를 비롯해 반목하는 기업들의 협업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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