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 정치 잣대 넘어 '탁월한 저널리즘'의 노동 보도 경쟁해야"

[책과 언론] '노동 보도 현황과 개선 방안 연구' 박영흠·안수찬·박권일·강태영

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재단)이 지난해 말 발간한 연구서 <노동 보도 현황과 개선 방안 연구>는 현재 우리 사회에 매우 필요한 논의거리를 제공하는 책이다. 최근 극단적인 노조 혐오 보도가 나와 큰 지탄을 받았다. ‘보수 언론이 반(反)노동의 관점에서 노동 이슈를 편향적으로 다룬다’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큰 맥락에서 진보·보수 언론을 막론하고 노동 보도는 이런 식으로 이뤄져왔다. 노동에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한 사회와 언론지형은 고려돼야겠지만 진영 간 대결 차원에서, 매체 성격에 따라 한쪽 입장만 대변하는 노동 보도가 팽배했던 것은 분명하다. 책은 이 현실에서 우리의 ‘노동 보도’ 전반을 이념·정파가 아닌 저널리즘 측면에서 바라보고 언론 전반의 개선방안을 모색하려 한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지난 25일 저녁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 노조법 개정 등을 촉구하는 1박2일 노숙투쟁 집회를 하자 경찰이 강제 해산 시키고 있다. /뉴시스


박영흠 언론재단 선임연구위원,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박권일 독립연구자, 강태영 언더스코어 대표 등이 참여한 연구는 선행연구 조사를 거쳐 빅데이터 분석부터 시도한다. 1997년 1월부터 2022년 9월까지, 25년 간 22개 언론사의 총 44만여건 노동 기사를 수집, 임베딩·문서군집화 알고리즘을 써 분석했다. 시간 변화에 따라 언론의 주요 노동 보도 이슈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매체 성향에 따른 차이는 있었는지 등을 살폈다. 연구전체에선 노동 보도의 전체 변화 추이를 큰 그림 차원에서, 양적으로 보는 과정이다.


분석결과 가장 전통적인 노동 이슈인 ‘파업’ 보도는 여전히 많지만 20여년간 일관되게 비중이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몇 년 새 ‘산업재해’ ‘갑질’ 같은 새 주제들이 주요 의제로 성장했고 ‘최저임금’ 보도가 2010년대 후반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 결과였다. 노동 보도의 양이 늘었고 새 주제가 노동 보도에 등장한 변화다. 특히 매체별 노동 보도의 다양성을 측정한 내용이 담겼는데 임베딩 방식에 따른 차이는 있었지만 아시아경제, 지상파 3사, 머니투데이는 다양성이 높게, 한겨레 등 진보 성향 언론은 낮게 나타났다. 진보 언론 노동보도의 낮은 다양성은 일정 시기가 아닌 전체 기간에 걸쳐 일관된 특징이었다.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 분석으로 한국 언론계에서 높이 평가받는 노동 보도의 특징과 한계도 살폈다. 1990년부터 2021년까지 93건 노동 보도 수상작을 분석해 ‘2010년대 중반부터 노동 심층 기사가 국내 언론에서 본격 이뤄졌지만 보수 언론의 노력은 미흡했고, 지상파 방송도 규모에 비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수상작 상당수가 지역 보도인 것으로 나타나며 지역언론 역할의 중요성이 언급되기도 했다. 주제별 분석에선 최근 청년실업·산재 등 이슈 쏠림이 확인됐는데, 이는 이주·여성 노동 이슈가 보도되지 못하는 현상과 맞닿아 있다는 평도 있었다. 수상작에서 발견되는 관성이 탁월한 노동 보도가 갖춰야 할 ‘의외성’을 가로막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의제, 주제, 취재방법, 보도방식은 물론 취재원 표기, 반론반영 등 여러 측면에서 답습이 만연되며 ‘새 기사’를 개척하려는 시도가 부족했다는 비판이다.


노동 분야를 경험한 현직 언론인, 관련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에선 ‘갈등과 사건에 집중된 보도’, ‘노사 간 진영 논리에 따른 보도 양극화’ 등이 거론되며 문제점과 해결방안이 제시됐다. 연구자들은 특히 “보수 성향 언론이 노동에 대한 과도하게 적대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역할을 강조했다. 시장지배적 위치에 있는 보수 언론의 변화 없인 개선의 의미가 제한될 수밖에 없고,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방어 차원에서 진보 언론이 노조 편향으로 기울게 만드는 정파 무한대립 구도 역시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동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절대 다수 구성원의 사회적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슈로서 보수 언론의 의제가 될 수 있고, 실제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등 자유주의 성향 해외 보수 언론에선 노동을 그렇게 다룬다는 설명이 포함됐다. ‘갈등을 매개하는 언론’이 아니라 ‘토론을 매개하는 언론’으로 진보 언론이 먼저 변모해야 한다는 제언도 이뤄졌다.


책은 진보·보수 성향을 떠나 언론의 노동 보도가 중요하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통약 불가능한 내용들을 다층적으로 풀어놓으며 문제점과 해법, 개선방안을 적는다. 이를 통해 진보·보수 매체가 노동 보도를 두고 이념과 정치적 잣대에 기반한 진영 싸움이 아니라 ‘탁월한 저널리즘’의 경쟁을 하는 환경을 기대한다. 언론계 오랜 관성과 그간 정파성의 지형을 돌아보면 이 바람조차 실현이 쉽진 않아 보인다. 다만 기자 하나, 언론 한 곳이 기존 행태에 문제의식을 갖고 변화를 시도할 때 이 연구서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듯싶다. 어쩌면 이 책은 그 몇 명, “언론의 목표는 특정 진영의 승리가 아니라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법의 도출”(심층 인터뷰 참여자)이란 말에 공감하고 실천하려는 누군가를 위한 것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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