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잃어야 외양간 고치는 의원님들

[이슈 인사이드 | 데이터] 배여운 SBS 기자

배여운 SBS 기자

21대 국회의 전체 의안 가결률은 29.6%에 그친다. 하지만 이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수치는 공직자의 재산신고 의무와 밀접하게 관련 있는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의 가결률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온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15일 기준으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 57건 중 고작 3건(5.3%)만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시민단체와 언론 그리고 학계에서는 그간 줄기차게 공직자윤리법의 구멍을 지적하며 목소리를 내어왔지만 생각보다 개정 법률안의 통과 비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가결될 만큼 법률안의 수준이 낮아서일까? 아니었다. 발의된 의안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왜 이런 훌륭한 법률안이 국회 밖으로 나오지 못할까 싶을 정도로 훌륭하다. 특히 2년 전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을 보면 공직자 재산 내역을 관보나 공보 형태가 아니라 국민들이 분석하기 용이하게 DB형태로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그동안 여러 시민단체와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한 목소리를 담아 충실하게 발의했지만, 소관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잊혀졌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의원의 ‘코인 논란’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사실 공직자 재산신고 사항에 가상자산(코인 등)을 포함시키자는 논의는 꽤 오래전부터 정치권에서 나왔다. 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18년 1월에 당시 정동영 의원이 공직자의 부정 재산 증식 방지를 위해 발의했지만 논의되지 못하고 폐기되며 결국 가상자산의 재산 신고가 법의 테두리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일부 의원들의 노력은 계속됐다. 21대 국회 문이 열리고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이 2021년 5월에 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을 의무적으로 공직자 재산신고 사항에 포함하는 내용의 법률을 다시 발의했지만, 이 역시 위원회 심사에서 막혔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법은 국회의원 스스로가 쉽게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5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개정안이 단 2주 안에 통과될 듯싶다. 더불어민주당은 14일 의원총회 후에 결의문을 통해서 공직자 재산신고와 이해충돌 방지 제도의 허점이 드러났다며 가상자산을 재산신고 사항에 포함시켜 5월 안에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과거 정동영, 이용우 의원이 발의한 내용과 크게 다를 게 없지만 그 사이에 결국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이제야 울며 겨자 먹는 것마냥 법률안을 통과시키는 모양새라 여론 역시 좋지 않다. 많이 늦었지만 시민단체와 언론에서 그토록 지적했던 것들이 통과될 수 있다면 환영이다.


이왕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할 거라면 앞서 언급했듯이 21대 국회에서 여전히 계류 중인 개정안을 꼼꼼하게 봐주셨으면 한다. 가상자산이란 소를 잃고 나서야 급하게 외양간을 고쳤듯이 언제 또 다른 소를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현행 공직자윤리법에는 구멍이 많기 때문이다.


아직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한 54건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도 빠른 시일 내에 본회의 통과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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