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나고 슬프고 힘들지만… 사건기자 하길 잘했어요"

[인터뷰] '이태원 참사 진실버스' 열흘간 동행취재한 박희영 CBS 기자

이태원 참사 150일째이던 지난 3월27일, 희생자 유가족들을 태운 ‘10·29 진실버스’가 서울광장 분향소 앞을 출발했다.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민동의청원 참여를 호소하며 인천, 광주, 부산, 대구 등 전국 13개 도시를 열흘간 도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이 버스에 올라탄 박희영 CBS 기자는 그 길로 꼬박 열흘간의 일정을 유가족들과 함께했다. 그렇게 써낸 르포르타주 ‘이태원 참사 ‘진실버스’ 동행기’로 지난 10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가 주는 ‘4월 민주언론실천상’을 수상했다.


계획된 동행은 아니었다. 사회부 사건팀에서 중부라인을 담당하는 박 기자는 그날 오전 서울광장에서 열린 유가족협의회 기자회견을 취재하러 간 참이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버스가 떠나려는 순간, 캡(사건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버스 탈 수 있겠니?” 질문을 받고 보니 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길게 고민할 시간도 없었던 터라 일단 하겠다고 답한 뒤 “양말 한 켤레 준비도 안 된” 채로 버스에 올라탔다.

박희영 기자는 꿈꾸던 사건기자가 되고 3개월차에 이태원 참사를 겪었고, 최근엔 참사 유가족들과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며 열흘간 동행 취재했다.


준비 없이 떠난 출장은 역시 쉽지 않았다. “첫날은 혼이 빠져 있었다”고 박 기자는 말했다. 몸이 힘들어서만은 아니었다. 이태원 참사는 그가 사건팀 기자 3개월 차쯤 됐을 때 터졌다. “참사 현장부터 장례식까지 한 달간은 계속 그것만 취재했어요. 그때 장례식장에서 유가족들을 취재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일단 가까이 다가서는 것조차 죄송하고, 50~60대 어른들인데 그런 중년 남성이 그렇게 슬프게 우는 모습을 그때 처음 본 것 같아요. 그렇게 연약해진 부모들을 취재하면서 저도 많이 울고 같이 했던 사건팀 선배 동기 다 엄청 많이 울고요.”


심리치료를 받아보라는 선배와 회사의 권고도 흘려들은 채 버티던 그는 이후 “수사의 시간”으로 넘어가 경찰과 구청 등의 책임을 분석하는 취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치료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버스에 올라탄 순간, 그 장례식장이 다시 떠올랐던 거다. “열흘 내내 유가족들이 참사로 희생된 자기 가족에 관해 얘기하는 거라, 끊임없이 눈물 흘리며 얘기하는 그 모습을 옆에서 취재하면 저도 같이 감정이 동화되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전국을 돌며 서명운동과 퇴근길 선전전 등을 반복하는 일정 속에서 매일 새로운 기사를 써야 한다는 부담도 컸다. 현장에 다른 기자도 없고, 뭘 어떻게 쓰는지는 입사 만 1년도 안 된 자신의 판단에 달려 있었다. 그러니 끊임없이 보고 듣고 취재하는 수밖에 없었다. 매일 아침 7시에 시작해 저녁 7시 무렵 끝나는 전 일정을 취재한 뒤 밤엔 또 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밤새 쓰다가 기절했다가 새벽에 다시 쓰는” 식이었다. 그렇게 곁에서 내내 보고 듣고 하니 새로운 모습들이 보였다. ‘철거냐 사수냐’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는 희생자 분향소가 유가족들에겐 연대와 치유의 장소란 의미가 있다는 것, 이들이 모여서 자기 아이들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거워하고, 본인의 이름보다 죽은 자식의 이름으로 불리길 원한다는 것도 “함께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감정이었다.


한편으론 평범한 시민이 유가족들에게 험한 말을 쏟아내는 “2차 가해”의 현장도 종종 목격했다. ‘어떻게 저런 행동이 가능하지?’ 혼란스러웠다. 그때마다 능력의 한계를 느끼면서 “좀 더 잘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기자로서 뭔가 부족했나’, ‘언론이 어떤 역할을 못 해서 그런가’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문제 지적을 충분히 안 했나, 이게 문제라고 더 빨리 얘기해야 했는데 우리가 뭔가 놓친 게 있나 생각했죠.” 박 기자는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건 본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위해서”라며 “‘진상 규명 다 된 거 아니냐, 뭘 더 하자는 거냐’ 약간 떼쓰기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는데, 우리 사회가 또다시 이런 참사를 당하지 않도록 예방을 더 철저히 하고, 또 이런 큰 사건이 일어난다면 대응 역량을 더 강화하는 길로 나아가자는 취지가 제 기사를 통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농민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사건팀 기자가 되고 싶어 2년 경력을 포기하고 지난해 6월 CBS에 신입 공채로 입사한 박 기자. 막상 사건팀에 들어오고 보니 “몸도 피곤하고 많은 시간 부정적인 감정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래도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슬프고 몸도 힘들고 지치고 무기력해지고, 그런데도 아침에 눈 떠서, 아니면 ‘어 이거 취재해 봐야겠다’ 생각이 드는 순간 머리가 반짝, 하면서 설레는 거예요. 그럼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가 보다’ 이게 느껴지죠.” 한동안은 사건 기자로 있고 싶다는 그에게 어떤 기자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수많은 문제를 성실하게 기록하는 기자가 되고 싶어요. 그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에서 사회가 발전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정확하게 기록하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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