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의 아전인수식 보도자료

[이슈 인사이드 | 환경] 김기범 경향신문 기자

김기범 경향신문 기자

“임도(林道) 있어야 산불 막는다”, “임도만 있었어도···”, “최전방 소방수 임도”


지난달 15일 산림청이 “산불 진화를 위해 임도 확충이 필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10배 가까이 산불진화임도를 늘릴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뒤 언론이 쏟아낸 기사 제목들이다. 해당 보도자료에서 산림청은 지난달 8일 경남 합천, 같은달 11일 경남 하동 지리산국립공원에서 각각 발생한 산불을 비교하면서 임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산림청이 임도 설치를 강변한 근거는 합천 산불은 임도가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밤샘 작업을 하면서 신속한 진화가 가능했던 반면, 지리산국립공원 산불은 국립공원이라 임도가 없는 탓에 야간 진화작업이 어려웠고, 피해 면적도 컸다는 것이었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한 주간지와 “환경단체도 산불현장을 두 눈으로 봐야 한다”며 환경단체 반대 때문에 임도 예산 확보가 어렵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부분 언론은 이 같은 산림청과 산림청장의 주장을 아무런 검증 없이 ‘복붙(복사·붙여넣기)’한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실제 산불이 난 현장에서 확인한 피해 산림의 모습은 산림청 주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지난달 30일 방문했던 지리산국립공원의 산불 피해지역은 소나무 자생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피해가 없어보였던 반면 합천 산불 현장은 대부분 죽거나 죽어가는 소나무로 가득했다.


이 같은 차이를 만들어낸 가장 큰 요인은 다름 아닌 수종이었다. 1967년 국립공원 지정 이후 50년 넘게 인위적인 손길을 최소화해온 지리산 산불 피해지역은 일부 능선부를 제외하곤 자연스럽게 활엽수림이 형성된 상태였다. 피해 현장에 빽빽이 들어선 활엽수는 ‘살아있는 물탱크’라는 별명을 증명하듯 100㏊ 넘는 면적을 태운 산불을 이겨냈지만 소나무숲은 모조리 불탄 상태였다. 불과 몇 미터 옆 활엽수와 꽃나무들이 봄을 맞아 싱그러운 잎과 꽃을 자랑하는 반면 소나무들이 모두 죽어버린 모습은 신기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 지리산 산불은 활엽수가 산불에 강하다는 교과서 속 내용을 현실에서 증명한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반면 합천 산불 피해지역은 인위적으로 조림한 소나무숲으로 이뤄져 있었으며, 산림청 설명대로 차량 통행이 가능한 임도가 매우 잘 갖춰진 곳이었다. 하지만 이 임도는 산불 피해를 막는 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지리산 피해지역 능선부의 소나무들과 마찬가지로 합천의 소나무숲은 모두 불에 탄 상태였다. 임도가 있어서 신속한 산불 진화가 가능하다는 산림청 주장이 무색할 정도였다.


물론 임도가 있으면 산불이 발생했을 때 지상 진화에 도움이 되고, 산불 확산을 막기 위한 저지선 역할을 한다는 산림청 주장도 완전히 그릇된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자연의 힘이 산불을 이겨내는 산림에까지 임도를 놓으려는 것은 물론 예방적 조치로서 숲의 자생력을 키우는 데 소홀한 태도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산림청이 아전인수식의 보도자료를 내면서 망신살이 뻗친 이번 지리산과 합천 산불 비교는 ‘산불에 강한 활엽수’ 얘기처럼 언론인들에게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가르침을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산림청의 임도 확대를 위한 이번 보도자료는 공신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정부, 공공기관, 기업 등의 보도자료가 항상 진실한 내용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반면교사로서 길이길이 남는 사례가 되지 않을까요”라는 어느 환경단체 활동가의 비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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