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쏠림'의 명암

[이슈 인사이드 | 경제] 김익환 한국경제신문 기자

김익환 한국경제신문 기자

한국은행 조사국은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 브레인 집단’이다. 100여명이 몸담은 조사국의 20%가량은 외국에서 공부한 경제학 석·박사 출신이다. 조사국 보고서는 통화정책을 비롯한 여러 경제정책의 근거로 활용된다.


요즘 한은 조사국은 삼성전자 분석 역량 높이기에 몰두하고 있다. 관련 보고서·데이터를 수집하고 관계자들과의 접촉도 늘리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반도체 업황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 삼성전자와 비공식으로 접촉했다는 이야기도 돈다.


주요 경제부처들도 삼성전자를 핵심 변수로 놓고 정책을 설계한다. 삼성전자 등의 고용·설비투자를 북돋는 정책 마련에 머리를 싸매는 경제 관료들도 적잖다. 증권가도 한국 주식시장 ‘대장주’인 삼성전자 행보에 시시각각 촉각을 곤두세운다. 소액주주만 500만명에 달하는 이 회사 주가의 작은 흐름에도 시장은 들썩인다.


이처럼 삼성전자를 빼놓고 한국 경제를 논하기는 어렵다. 이 회사의 부가가치는 국내총생산(GDP)을 구성하는 수출 투자 소비 등 모든 영역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쏠림은 삼성전자가 좋은 실적을 낼 때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실적이 나빠지면 심각해진다.


삼성전자는 작년 하반기부터 저조한 실적을 냈다. 삼성전자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5.8% 감소한 6000억원을 기록했다. 2009년 1분기(5900억원) 이후 14년 만에 가장 저조한 분기 실적이다. 이 회사 주력제품인 반도체 수요가 극도로 움츠러든 결과다.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에 따라 한국 경제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이 회사 주력제품인 반도체 수출은 올해 1~2월 124억달러(약 16조2100억원)로 전년 동기보다 42.5% 줄었다. 반도체 수출이 쪼그라들자 한국 경상수지는 올해 1월(-42억1000만달러), 2월(-5억2000만달러) 연속 적자를 냈다. 2012년 1~2월 이후 11년 만에 두 달 연속 적자다.


이 회사 실적 부진이 소비 심리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 주식 흐름이 좋지 않은 데다 배당액을 깎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아서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소액주주 500만명이 씀씀이를 줄일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삼성전자는 대만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TSMC와도 종종 비교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부터 글로벌 반도체 매출 1위 자리를 TSMC에 내줬다.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도 모두 TSMC에 밀린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3만2661달러)이 20년 만에 대만(3만3565달러)에 역전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으로 우리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부진한 실적에 따라 삼성전자 쏠림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를 압박해 이 같은 경제력 집중을 분산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삼성전자 지배구조를 뒤흔들 이른바 ‘삼성생명법’이 야당 주도로 입법화할 조짐도 보인다. 삼성전자를 옥좨서 쏠림 현상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명분과 실효성 면에서 모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배터리 방산 등 영역에서 세계적 역량을 갖춘 한국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 기업을 지원하고 육성해 삼성전자 쏠림 현상을 해소하는 것을 고민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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