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그리 정신은 없다

[이슈 인사이드 | 스포츠]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한 단체를 통해 매달 저소득층 아이를 후원하고 있다. 아이는 야구 선수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야구가 돈이 많이 들어가는 운동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런 아이를 보면서 많이 미안해한다.


요즘 야구는 ‘비싼’ 운동이다. 고교 2학년 야구부 학부모 얘기를 들어보자.


“학교에 월례비(감독, 코치 임금)로 내는 돈이 90만원이다. 식대 40만원(한 달 기준)도 따로 낸다. 야구 아카데미에서 과외를 받는데 10번에 150만원 정도 든다. 부상 위험도를 줄이기 위해 마사지 등 몸 관리도 받는데 한 번 갈 때마다 10만원 정도 들어간다. 두 달에 3번꼴로 가는 것 같다. 운동선수니까 프로틴과 영양제도 꾸준하게 먹어야 하는데 한 달 최소 10만원은 들어가는 것 같다.”


이뿐만이 아니다. 겨울 전지 훈련비를 별도로 내야 한다. 올겨울에는 국내에서 50일가량 훈련과 연습경기를 병행했는데 500만원 넘게 돈이 들었다고 한다. 전지훈련비 등을 제외하고 한 달에 ‘아마추어 야구 선수’에게 들어가는 돈은 평균적으로 250~300만원. 방망이, 글러브 등 장비 비용은 별도다. 다니는 학교에 훈련할 곳이 없으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데 이때도 구장 대여비, 버스 대절비 등이 따로 청구된다. 이게 한 달 15만원 정도다.


야구를 좋아하는 순간 모든 비용은 학생, 학부모 부담이 된다. 야구 명문고의 경우 동문회 후원으로 월례비 등이 제외된다고 해도 웬만한 서민 가정에서는 감당하기가 버거운 비용이다. 아마추어 야구계에서는 “1억이면 동아리, 2억이면 대학 선수, 3억이면 프로 선수”라는 얘기까지도 나온다. 현재와 같은 환경이라면 집안 도움을 못 받는 아이들은 야구라는 스포츠에 진입하는 것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이런 과정에서 재능 있는 일부 아이들은 일찌감치 운동을 포기하게 된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매해 흑인 선수가 줄어드는 이유도 ‘돈’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에는 72년 만에 흑인 선수 단 한 명도 없이 월드시리즈가 치러졌다. 센트럴 플로리다대학이 작년 5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시즌 개막 엔트리에 포함된 흑인 선수는 전체 7.2%에 그쳤다. 미국프로농구(NBA)는 81%, 미국프로풋볼(NFL)은 70%(이상 2020년 기준)가 흑인인 점을 고려하면 아주 낮은 수치다.


첼시 제인스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이에 대해 “야구는 풋볼, 농구 등에 비해 아마추어 흑인 선수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 많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뒤늦게 학교 야구부 지원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 흑인 선수 육성에 적극 나서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다.


이정후(키움 히어로즈)의 아버지이기도 한 이종범 LG 트윈스 코치는 “배가 고파서 야구를 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야구로 꼭 성공하고 싶었다”라고 한다. 하지만, ‘헝그리 정신’만으로는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다.


2023 WBC 1라운드 탈락 이후 프로, 아마추어 모두 ‘네 탓’만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정말 신나고, 즐겁게 야구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먼저 아닐까. “돈 없어서 운동 못 한다”는 말처럼 슬픈 얘기도 없는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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