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습니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날 저녁에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첫 문장이다. 물러나라는 정권의 신호에도 자리를 지켜온 자신이 검찰의 칼날에 직면한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는 지난 24일 2020년 TV조선 재승인 점수 조작 의혹과 관련해 위계공무집행방해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한 위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일부 심사위원이 고의로 점수를 낮게 준 과정에 한 위원장이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3년 전 재승인 심사에서 TV조선은 재승인 기준점은 넘었지만, 중점심사 항목인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 항목에서 0.85점 미달해 ‘조건부’ 재승인을 받았다. 검찰은 재승인 업무를 담당했던 방통위 국장과 과장이 심사위원장에게 TV조선이 재승인 요건을 충족하는 점수를 받은 것을 알려주고, 심사위원장이 일부 심사위원에게 점수를 낮춰달라고 요구해 그 결과가 점수에 반영됐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 22일 한 위원장을 불러 14시간 조사하면서 4가지 혐의사실을 적시했다고 한다. △한 위원장이 점수가 조작된 사실을 보고받아 알면서도 방통위 상임위원들에게 알리지 않고 의결했고 △민언련 출신의 특정인물을 심사위원으로 선임해 직권을 남용했으며 △4년의 승인기간 부여가 가능함에도 3년을 부여하도록 안건을 작성한 혐의를 적용했다. 한 위원장은 검찰의 혐의사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히 “언론에서 계속 제기됐던 조작지시 혐의는 언급도 되지 않았다”며 “모든 힘을 다하여 제 개인의 무고함 뿐만 아니라 방통위 전체 직원들의 무고함을 적극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지난해 6월부터 감사원 감사를 시작으로 검찰 수사, 국무조정실 감찰 등을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일부 심사위원을 시작으로 4차례에 걸쳐 방통위를 압수수색했고, 그 과정에서 방통위 직원 수십 명은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 전임 정권이 임명한 위원장이라는 이유로 국무회의에서 배제했고, 대통령실은 방통위 업무보고를 서면으로 받았다. 이번 구속영장 청구에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의심하는 이유다. 노골적인 사퇴 압박에도 물러나지 않자 감사원과 검찰이 움직였고, 특히 검찰은 방통위를 6개월간 탈탈 털어 한 위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민언련은 “권력기관을 총동원해 방송통신위원회를 흔들어댄 목적지는 방송통신위원장 구속영장이었다”고 비판했다.
평가 점수 조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점수 조작이 있었다면 재판에서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영장청구 배경에 대해 여러 의문이 나오는 상황에서 위원장이 구속될 경우 방통위 업무가 마비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안형환 부위원장 임기는 30일 종료되고, 김창룡 상임위원 임기도 4월5일 끝난다. 위원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상임위원 5명 중 3명이 공석이라 방통위 업무가 사실상 멈출 수밖에 없다.
불구속 수사 원칙을 거론하는 게 낯뜨거울 정도로 구속영장 청구가 남발되는 현실이지만, 검찰은 한 위원장의 영장을 청구하면서 혐의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방통위 국장과 과장, 심사위원장을 구속기소하면서 혐의를 세세하게 공개한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27일 논평에서 “그간 검찰을 비롯한 수사기관들이 방통위원장을 시급히 구속해야할 만한 사유를 충분히 제시하고, 입증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방통위 업무 마비를 노리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냐고 검찰에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