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이슈 인사이드 | 젠더]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

“엄마, 나 애 낳을까?” “정자는?”


결혼도 하지 않은 딸이 대뜸 보낸 메시지에 온갖 잔소리를 덧붙일 만도 한데, 쿨하다 못해 실용적인 엄마의 대답에 웃음이 터졌다. 엄마는 결혼하란 말 대신 비혼 출산한 방송인 허수경, 사유리의 기사를 공유하는 등 적극적으로 ‘정자 구하는 법’을 대신 알아봐 줬다. 역시 페미니스트 딸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출산이 궁금해진 까닭에는, 뜻밖에도 여러 페미니스트들과 나눈 수다가 자리하고 있다. 필경 일터와 가정 모두에서 치열하게 버티는 중일 정치인, 사업가, 언론인 등 선배 여성들이 입을 모아 “(결혼은 모르겠지만) 아이를 낳은 것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출산은 자아의 상실, 결혼은 가부장제 복속 수단’ 같은 저항적 말이 오갈 거라 예상했던 터라, 꽤 산뜻한 충격을 받았고 관심이 생겼다. 그들이 찬탄하는 무조건적 사랑의 대상이 생기는 삶에.


흥미를 끄는 일이라면 죄다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지난해부터 결혼 않고 출산하는 법을 알아봤지만 수개월 탐색 끝에 내린 결론은 ‘할 수 없다’였다. 싱글맘 외벌이로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나 일-육아 양립은 부차적 문제다. 2020년 보건복지부는 비혼모의 출산이 ‘불법’이 아니라고 밝혔으나, 현재 산부인과학회의 윤리지침은 법률혼·사실혼 부부에만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 같은 시술을 실시하게 돼 있다. 겨우 정자 기증을 받아도, 산부인과에서는 이 지침을 근거로 미·비혼의 보조생식술을 거절한다. 30대 중반이 되니 ‘혹시’하는 마음에 주변에서는 ‘난자 냉동’ 정보도 활발히 공유하는데, 미·비혼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500만원 정도를 자비로 지불한단다.


이쯤 되면 결혼이 출산을 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저렴하고 확실한 방법’라는 깨달음에 가닿는다. 그래서 결혼한 삶을 상상해 보고자 주변 여성들을 심층 취재했다. “경력 공백 이후 다시 정규직을 얻을 상상도 못한다”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학원에 보내는데 교육비만 한 명의 월급이 들어간다” “육아휴직을 쓰겠다던 남편은 막상 승진과 고과 때문에 계속 회사를 다니고, 독박육아하는 나만 경력이 끊겼다” “출산과 육아로 자리를 비우는 여성은 조직에서 늘 ‘2등 시민’ 취급을 받는다” “육아에도 일에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해 매일 죄책감을 느낀다” … 괴로우니 그만 알아보자.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결국 0.7명대를 기록했다. 언제까지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라며 애먼 여자들을 탓할 텐가. 나는 오히려 ‘구조적 성차별’이라는 문제 본질과 ‘성평등’이라는 해법을 외면하는 사회와 국가가 여성들의 ‘출산할 자유’를 강탈하고 있다고 본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프랑스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평생 1.83명의 아이를 낳았을 것이다. 아빠도 의무적으로 육아휴직을 쓰는 스웨덴에서 태어났다면 아이에게 형제, 자매도 만들어줄 수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평등 주무부처를 없애려는 정부가 집권하고 유교가부장제가 굳건한 성차별 사회에 태어난 탓에, 아이 낳고 기르는 기쁨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이달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직접 주재하며, 종합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부디, 정부가 ‘성평등’이라는 본질에 접근하길 바란다.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만 바라보지 않고, 부모가 공평하게 양육하고, 아이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환대하며, 엄마가 되고 나서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나도 엄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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