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통계, 우리는 책임 없나

[이슈 인사이드 | 데이터] 배여운 SBS 기자

배여운 SBS 기자

데이터저널리스트는 출입처가 따로 없다. 대신 통계와 데이터가 중요한 취재원이다. 이를 통해 공직을 감시하고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숫자 하나를 뽑기 위해 길게는 한 달씩 데이터와 통계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만큼 객관적인 사회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오래 공들이는 중요한 취재원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그 통계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정부에서 만든 통계가 왜곡됐다고 포문을 열었고 여야는 계속해서 힘겨루기 중이다. 국가의 근본이라고 불리는 통계가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통계 왜곡은 최근에만 불거진 이슈는 아니다. 과거 모든 정권에서 통계는 정권의 실적을 알리는 노리개로 쓰였다.


빅카인즈에서 ‘통계 왜곡’이라고 1990년 이후 과거 기사를 검색하면 총 1만2176건이다. 보수와 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역대 정권은 통계를 상습적으로 왜곡하려고 했다. 통계와 데이터로 기사를 쓰는 데이터저널리스트 입장에서 안타까운 언론의 단상이다.


이처럼 정부가 통계를 생산하는 과정에 개입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번 논란을 통해 우리 언론 역시 반성하고 신중할 필요가 있다. 권력자의 통계 왜곡을 꾸짖는 언론도 그간 수없이 통계를 기사 ‘야마’에 짜 맞추고 거짓말을 해왔다. 시쳇말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과 다를 게 없다.


정치인과 권력자를 검증하는 취재만큼은 신중하게 하면서도 통계를 비롯한 숫자를 기사에서 다룰 때는 ‘정말 나쁜 의도가 없는 건가?’ 싶을 정도로 허술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주로 엉터리 해석, 자의적 비교, 차트 왜곡 등의 방식이다.


2018년도에는 한 신문사에서 한국과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서로 다른 비교 시점으로 보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국과 미국의 2분기 성장률을 비교한 기사였는데 한국은 ‘전기 대비’, 미국은 이를 4제곱한 ‘연율 환산’으로 동등 비교한 것이다. 통계로 거짓말을 하고 싶을 때 자주 쓰는 방식이다.


해석도 내 맘대로다. 2019년에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언론 모니터 결과를 보면 통계청의 <2019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 발표를 신문사마다 제각각 해석해 보도했다. 진보 언론은 청년 일자리 정책이 개선됐다고 했지만, 보수 언론은 악화됐다고 통계를 근거로 내밀었다. 같은 통계였지만 해석은 정반대였다.


이뿐만 아니라 선거 시즌만 되면 여론조사 결과를 교묘하게 그래프로 속이는 이른바 정크 차트(Junk Chart) 역시 언론의 대표적인 통계 기만 사례다. 그나마 공신력 있다고 믿는 통계와 데이터. 이들은 거짓말하지 않을 것이란 시청자와 독자의 기대를 언론 스스로 저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기자가 되기 전에 한 경제 매체에서 통계를 왜곡하지 않는 방법을 강의한 적이 있다. 수업이 끝난 후에 한 분께서 오시더니 “원론적으로는 다 맞는데, 기사가 나가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라며 “너무 언론사 현실을 모르고 말씀하신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통계를 왜곡했다고 자인하는 꼴이었다.


통계는 죄가 없다. 통계를 다루는 정부와 언론이 문제일 뿐. 나의 취재원이 덜 고통받을 수 있도록 통계를 활용한 보도가 더욱 신중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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