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령'이 보고 싶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3월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밝히며 제왕적 권력을 벗어나겠다고 선언했다. 청와대 공간의 폐쇄성을 벗어나 늘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 다짐은 지켜지고 있는가. MBC 전용기 탑승 배제와 출근길 문답 중단, 신년 기자회견 없는 신년사 발표를 보면 ‘제왕적’ 대통령으로 한발 더 다가간 듯 보인다.


대통령실 이전을 설명하며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했던 말은 지금 대통령의 상태를 적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도어스테핑을 중단하며 대통령실 1층 로비에 설치한 ‘가벽’은 상징적이다. 불통의 대통령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비친다. 이런 현실을 모르는지 조선일보와 새해 인터뷰에서 “도어스테핑이라는 게 대통령과 젊은 기자들이 힘을 합쳐서 대국민 소통을 잘 해보자는 거였는데, 협조 체제가 잘 안돼서 많이 아쉽다”며 중단 책임을 언론에 떠넘겼다. 기자들이 국민을 대표해 궁금해하는 것을 묻는 것이 도어스테핑 취지였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본인의 생각을 받아쓰기 하라는 공간이 아니었다. 작년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전용기 안에서 가깝게 지내는 두 언론사 기자만 따로 불러 1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눈 건 예고편이었다. 윤 대통령이 말한 대국민 소통이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잘 포장해서 전달하는 언론을 창구로 일방적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든다.


신년 기자회견을 건너뛴 데서 국정에 대한 불편한 질문에 귀 닫고, 하고 싶은 말만 하겠다는 고집스러움이 묻어난다. 신년사에서 밝힌 노동·교육·연금 개혁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설명 없이 툭 던지고 끝나버렸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사과, 야당과의 협치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지 정작 국민이 궁금한 내용은 신년사에서 다루지도 않았다. 집권 2년차에 접어들었는데 벌써 불통의 벽을 높이 쌓고 있어 안타깝다. 취임하며 내세운 국민통합 대신 갈등과 분열에 앞장서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윤 대통령과 단독 인터뷰를 한 조선일보조차 국민 분열을 염려하고 있다. 조선일보 신년 여론조사에서 국민 절반이 “정치적 입장 차이가 커서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응답했다. 10명 중 4명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과 식사 또는 술자리가 불편하다”고 말할 정도다. 이념 차이로 인한 갈등의 골이 깊게 패인 사실을 엿볼 수 있다. 한겨레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절반이 “정당 간, 유권자 간 분열과 대립이 과거보다 심화됐다”고 응답했다. 누구 책임이 큰지 물어본 결과, “대통령 책임”이 38.4%로 나왔다. 또 “민주주의 등 우리 사회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도 58%에 달했다. 사회가 극도로 갈라져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분열된 사회를 통합해야 할 언론의 숙제가 결코 가볍지 않고 대통령의 책임 또한 무겁다.


여론조사에 나타난 국민의 바람은 진영 논리에 갇힌 국정운영을 멈추라는 호소다. ‘내 편’만 보고 국정을 이끌지 말라는 당부다. 가까운 언론만 따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내 편’만 보고 마이웨이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원치 않는 보도를 했다고 배제하는 언론관은 국민 분열을 더 자극하는 행동이다. 도어스테핑이 아니라면 다른 언론 소통 창구를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4개월 넘게 공석인 대통령실 대변인을 찾는 게 첫 단추일 수 있다.


윤 대통령에게 제안하고 싶다. 소통에 능한 ‘소통령’이 되면 어떤가.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진 국론을 한데 모으기 위해 언론과 소통하는 ‘소통령’이 되면 어떤가. 제왕적 권력을 내려놓고 국민의 뜻을 받드는 ‘소통령’이 되면 어떤가. 이렇게만 된다면 스스로 드러내지 않아도 진정한 ‘대통합’의 대통령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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