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출신' 타이틀 단 인터뷰이 되고 싶단 생각… 국회 기자실 박차고 나왔다

[기자 그 후] (42) 고승혁 옥소폴리틱스 부사장 (전 국민일보·JTBC 기자)

2016년 국회 기자실에 있던 정치부 말진 기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 기자 출신인 장강명 소설가 인터뷰 기사를 읽는 순간이었다. 장 작가는 국회 기자실에서 퇴사를 결심하고 그길로 사표를 냈다고 했다. 과거의 장 작가와 같은 공간에서, 말진 기자는 막연한 미래를 그렸다. ‘언젠가 나도 ‘기자 출신’ 타이틀을 단 인터뷰이가 돼보고 싶다.’ 그 꿈(?)은 7년 만에 이뤄졌다. 기자협회보 인터뷰 코너 <기자 그 후>의 ‘고승혁 옥소폴리틱스 부사장’ 편을 통해서다.


고 부사장은 올 초 기자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2015년 수습 공채로 입사한 국민일보에서 3년, 2018년 이직한 JTBC에서 4년을 보내고 나서다. 그는 주로 정치부와 디지털부서에서 경험을 쌓았다. 만 7년 경력에 5년을 국회 출입 기자로 살며 내내 민주당을 담당했다. 주니어 시절 국민일보의 디지털 브랜드 ‘취재대행소 왱’ 기획·제작에 참여하면서 종이신문 밖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JTBC로 옮겨서도 유튜브 라이브 ‘뉴스원룸’과 ‘소셜라이브’ 등을 진행하며 디지털 저널리즘을 고민했다.

만 7년간 기자 생활을 하고 올 초 스타트업으로 전직한 고승혁 옥소폴리틱스 부사장.


하루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국회에서 5년, 신문사에서 방송사로 또 디지털 플랫폼으로. 기자로서 그의 궤적은 다이내믹해 보였다. 고 부사장은 “나름의 보람과 재미는 있었다”고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실망을 마주해야 했다. “국회는 누아르가 아니라 시트콤이에요. 정치인들은 맨날 ‘국민의 뜻대로 한다’는데, 정작 국민의 뜻이 뭔진 몰라요. 그런 모습이 답답했어요. 회사 안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아요. 디지털 분야에서 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거든요. 기획안이나 보고서도 여러 번 썼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큰 조직이니까, 쉽지 않았죠.”


그사이 그의 몸과 마음은 지쳐가고 있었다. 이른 아침 시작해 새벽에서야 끝나는 국회 생활을 더 해낼 자신이 없었다. 시시때때로 울리는 메시지 알람과 전화벨 소리도 버거워졌다.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언론산업 자체에 회의감도 들었다. 병원에 가야 할 만큼 고통이 심해졌다. 지금은 아내가 된 당시 여자친구가 그에게 프러포즈하며 사직서를 건넬 정도였다. ‘결혼해서 가계는 자신이 책임질 테니 너무 괴로우면 퇴사해도 된다’는 의미였다. 오래 고민했지만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고승혁 기자’의 사표는 지난 1월 수리됐다.


“그동안 도전적인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안정지향적이에요. 보다 안정적으로 살아보려고 월급이 조금 더 많은 회사로 이직했고, 이번엔 이렇게 아픈 상태로 있다간 죽겠다 싶어서 언론사를 나왔습니다.”


아픈 나를 돌보려고 아무 계획 없이 사표를 냈는데 기회가 찾아왔다. 정치 데이터 플랫폼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옥소폴리틱스’가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부사장으로 합류한 그는 높은 자유도만큼 책임이 큰 스타트업에서 새 삶을 살고 있다. 지난여름엔 한 달간 강원도 양양에서 원격근무를 하기도 했다. 기자였다면 경험할 수 없는 환경에서 그의 상처는 아물어갔다.


2019년 설립된 옥소폴리틱스는 정치성향을 진보-중도진보-중도-중도보수-보수 등 5개로 세분해 여론을 추적한다. 이용자는 몇 가지 질문에 답해 자신의 정치성향을 확인해야 O·X로 대답하는 여론조사에 참여할 수 있다. 중도층의 목소리를 폭넓게 반영하면서 정치성향 역선택을 방지하는 장치다. 고 부사장은 정치부 기자 시절 느낀 답답함을 여기서 해소할 수 있었다.


“정치성향 분포를 보면 맨 왼쪽과 맨 오른쪽이 각각 20%인데 이들이 전체 목소리의 80%를 차지한다고 해요. 중도 목소리가 소거되니까 양극단에 있는 한 사람 의견이 열 사람이 말한 것처럼 들리죠. 실제 저희 데이터를 봐도 중도층은 60%예요. 중도 여론을 수치상으로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빅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게 저희 일입니다.”


고 부사장과 옥소폴리틱스의 지향점은 정치 다원화다. 어쩌면 정치인이나 정치부 기자가 바라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얼마 전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옥소폴리틱스를 비전문기관이라고 비판했어요. 저희처럼 앱으로 하는 여론조사는 관련 법이 없거든요. 반면 우편 조사는 합법인데 지금은 누구도 하지 않아요. 전화 조사도 스팸으로 거절당하잖아요. 모든 스타트업이 맞닥뜨리는 문제예요. 세상은 변하고 변화엔 늘 반동이 뒤따라요. 이제 그 반동을 넘어서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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