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모습의 2022 카타르 월드컵

[글로벌 리포트 | 중동] 원요환 YTN 해외리포터(UAE)·현 A320 조종사

원요환 YTN 해외리포터(UAE)·현 A320 조종사

달력을 보다가 어느덧 2022년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간은 참 빠르다. 새해를 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1월이라니. 조금만 있으면 송년회다, 연말모임이다 해서 또 시끌벅적할 것이다. 이곳 중동지역은 현재 2022년 최대 이벤트인 카타르 도하 월드컵으로 전역이 분주하다. 이번 월드컵은 여름에 개최됐던 관례를 깨고 겨울에 열리고, 중동지역에서 개최되는 첫 월드컵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도하 월드컵은 필자에게도 의미가 깊다. 2017년 한국을 떠나 두바이에 정착하면서 당시 주위 사람들에게 “도하 월드컵 때 두바이에서 가까우니 꼭 가야죠”라고 자주 말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머나먼 일처럼 느껴졌는데 5년이 훌쩍 지나 그것이 실제로 이뤄진 지금, 세월의 무상함과 말이 현실이 되는 기묘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여러모로 설레는 이벤트이건만 관련해서 여러 비판도 나오고 있는 중이다. 우선 무리한 일정에 맞춰 경기장을 짓다 보니 인권탄압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월드컵이 피로 얼룩졌다. 월드컵 경기장 건설 공사에 투입된 외국인 이주 노동자 6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지만, 카타르 정부도 국제축구연맹(FIFA)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한 이유는 작업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건설 인부들은 케냐,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인도,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등 인근 지역에서 건너온 이주 노동자들이다. 이에 노동 인권을 탄압하는 국가가 월드컵을 개최할 자격이 있느냐는 지적이 쏟아지자 카타르 측은 그간 대책 마련에 힘써왔다고 반박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축구협회 10곳이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고통받은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FIFA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공동성명을 내기도 했다. 월드컵 준비 과정 중 고통받은 노동자들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고, 수도 도하에 이주 노동자 지원 센터를 건립하라는 제안이다. 또한 월드컵 유치비리 논란, 성소수자 탄압 논란, 금주 논란 등도 나오는 실정이다.


주위 상황도 그렇게 호의적이진 않다. 이란에서 벌어지는 히잡 반대 시위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고, 이란이 러시아를 도와준 사실과 사우디를 공격할 수 있다는 첩보가 뉴스로 전해지면서 중동지방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 같은 전쟁이 발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말로 이란이 사우디를 공격한다면 카타르 입장에서는 커다란 재앙이다. 지리상 이란은 사우디보다 카타르와 더 가까워 필연적으로 카타르는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월드컵도 연기만 되면 다행이고 더 심하면 안전 문제로 인해 아예 카타르에서 월드컵이 열리지 못할 수도 있다.


스포츠에는 정치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카타르와 단교까지 했다가 이제는 ‘월드컵은 도하에서, 관광은 두바이에서’를 외치는 UAE 정부도 정치·경제 논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반면에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은 4년 만에 찾아온 기회로 몸이 달아있다. 공을 차고 드리블하고 슛을 넣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가끔 심판 판정이 문제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축구는 실력으로 선수들이 판가름 받고, 능력 있는 선수에게 보상이 돌아가는 공정한 영역이다.


이처럼 정치도 좋고 경제도 좋지만 그래도 경기를 할 때만큼은 여유를 갖고 모두가 즐겼으면 한다. 주위의 많은 외국 친구들이 축구를 좋아하지만 자신의 나라가 실력이 없으니 월드컵과는 영 인연이 없어 ‘한국은 월드컵 진출했는데?’란 필자 말에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것이 기억난다. 너그러움과 여유를 가져도 좋다. 힘든 일들이 많았던 올해 2022년을 잠시 내려놓고 옹기종기 앉아 가족 연인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 승패에 상관없이 하나 되어 응원한다면 그 자체로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지난 올림픽을 통해 배웠다. 이번 월드컵이 누군가에는 승리의 함성이 가득한 현장으로, 누군가에겐 진영을 뛰어넘어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는 시간으로, 또 누군가에겐 지나간 세월을 추억하고 미래로 가는 소중한 시간으로 남기를 바란다. 축구공은 둥글다는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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