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에 흔들리는 한국 경제

[이슈 인사이드 | 경제] 김익환 한국경제신문 기자

김익환 한국경제신문 기자

2021년 5월과 6월. 한국은행은 기자간담회와 창립기념사를 통해 기준금리 인상 의지를 밝혔다. 지난해 6월11일 창립기념사에 담긴 “통화정책을 적절한 시점부터 질서 있게 정상화해 나갈 것”이라는 문구 등이 대표적이다. 한은 임직원들도 비슷한 시점 여러 채널을 통해 시장에 연내 금리인상 의지를 전달했다.


하지만 여의도 증권가는 한은의 메시지를 무시했다. 증권사 대부분은 작년 5~6월에 “한은이 연내 금리인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쏟아냈다. 2024년 1분기에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보고서까지 나왔다. 증권가의 보고서가 기관투자가와 언론에 퍼지면서 시장도 혼선을 빚었다. 가계·기업이 금리인상에 대비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번졌다.


한은 임직원들은 이 같은 증권가 행보에 의아해했다. 증권사들이 한은의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 아니냐는 내부 평가까지 나왔다. 기준금리 인상은 유동성을 흡수하는 만큼 주식·채권 가격을 훼손한다. 그동안 기관투자가에 주식과 채권을 적잖게 팔아 수익을 올린 증권사들이 한은의 메시지를 고의로 뭉갠 것 아니냐는 평가도 많았다. 한은은 예고한 대로 지난해 8월부터 금리인상을 이어갔다. 올해도 금리인상을 이어가면서 주식시장은 하향곡선을 그렸다. 부동산 시장도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이처럼 시장금리가 치솟거나 경기가 후퇴하는 변곡점에서는 허위·조작 정보의 파급력은 크다. 가계·기업의 판단력을 흐리는 한편 자산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지난달 19일 증권가와 기업, 정부 부처로 무분별하게 퍼진 한 ‘지라시’가 대표적이다.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캐피탈이 연 15%대 고금리로 기업어음(CP) 발행에 나섰지만 실패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계열사인 롯데건설도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증권사와 건설사로 줄줄이 자금난이 번지고 있다는 관측도 포함됐다. 하지만 롯데건설과 롯데캐피탈 관계자들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황당해했다. 급기야 SNS에는 롯데그룹 계열사를 비롯해 일부 업체들의 부도설까지 흘러나왔다.


모두 가짜뉴스로 판명됐지만, 시장은 상당한 홍역을 치렀다. 롯데그룹을 비롯해 한화그룹과 LG그룹 계열사들도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움츠러든 기관투자자들이 대기업 회사채마저 매입을 꺼린 결과다. 시장금리가 오르는 상황에 레고랜드 사태가 터진 것도 자금시장의 경색을 부추겼다. 강원도는 최근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을 위해 발행한 2050억원 규모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지급보증을 철회했다. 그 결과 해당 ABCP는 부도 처리됐고 자금시장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신용위기’ 상황이 전개됐다.


시장이 얼어붙자 지난달 23일 정부가 50조원 이상의 유동성을 긴급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자금시장을 둘러싼 불안 요인은 여전하다. 한국과 미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계속 인상할 뜻을 밝힌 만큼 ‘유동성 가뭄’은 보다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돈맥경화’에 봉착하는 기업이 늘어날 전망이다. “멀쩡한 기업도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흑자 도산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가짜뉴스가 한국 경제를 수렁으로 밀어 넣고 있는 셈이다. 언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가짜뉴스를 걸러내고 사실을 검증하는 언론의 핵심 역량을 발휘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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