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언론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믿을 수 없는 참사가 발생했다. 핼러윈을 앞둔 주말인 지난달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대규모 압사사고가 나 156명이 목숨을 잃는 등 300명 가까운 희생자가 나왔다. 국내 사고 중 외국인 사망자도 가장 많이 나왔고 압사 사고로도 역대 가장 큰 사상자가 발생한 초대형 사회적 재난이다. 희생자 60% 이상이 20대 젊은이다. 귀하지 않은 목숨은 없지만 희생자 대부분이 학생이거나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한창 때의 젊은이들이기에 이번 참사는 더욱 애통하다.


각 방송들이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참사 당일 밤 특보 체제로 전환했지만 사고 초기 보도는 혼란 그 자체였다. 경찰, 구급차, 의료진, 시민들이 뒤엉켜 있는 상황이고 현장 접근도 통제돼 사고의 전모를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미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등에서 참사 직후 심정지 상태로 쓰러져 있는 시민들의 모습, 의료진들이 심폐소생술을 하는 장면들이 공유됐고 방송들도 이를 여과 없이 내보냈다. 사망자와 부상자에 대한 공식발표가 나올 때까지 현장 영상들이 전파를 탄 부분은 이해할 구석이 있다. 하지만 참사 규모와 참사 원인이 대체적으로 밝혀진 참사 다음날과 이튿날에도 방송에서 비슷한 참혹한 현장 영상들은 장시간 노출됐다. 무신경한 처사였다. 유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의료진, 방송제작자, 시청자들의 심리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상파 3사와 YTN이 31일 “사고 원인 규명 등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고 현장 영상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힌 일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다. 이번 기회에 세월호 참사 이후 관행처럼 굳어져 있는 방송사들의 특보체제를 재점검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국민들에게 정보제공이 필수적인 자연재해는 특보체제가 불가피하더라도 사고 원인이 비교적 분명한 재난의 경우 시간 때우기식 특보체제가 오히려 국민들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는 한국 언론을 침몰시켰던 8년 전 세월호 참사를 상기시킨다. 세월호 참사는 재난의 크기도 비극적이었지만 한국 언론의 총체적 실패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무리한 속보경쟁으로 ‘전원구조’라는 초대형 오보를 낸 것은 물론이고 취재기자들이 홀로 생존한 6세 여아를 인터뷰 하거나 안산 단원고를 찾아가 숨진 학생의 책상과 노트를 촬영하는 등 비윤리적 행태로 지탄 대상이 됐다. 국민들의 높아진 윤리의식과 인권감수성을 외면한 채 취재경쟁에만 몰두했던 언론이 대가를 치른 것이다. 반성 끝에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협회 등 언론단체들이 ‘재난보도준칙’을 제정했지만 당시 문제의식이 제대로 체화됐는지는 의문이다. 준칙은 인터뷰를 강요하지 말고 질문을 세심히 고려하는 등 유가족과 지인의 인권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도 친구를 잃은 피해자 인터뷰가 수차례 방송을 타는 등 부적절한 보도가 속출했다. 유가족의 상처보다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며 여전히 유가족 인터뷰를 회사로부터 강요받는다는 현장기자들의 하소연도 끊이지 않는다.


참사가 발생하면 원인과 책임문제에 집중해 객관적 분석, 보도에 집중하는 외국 언론과 달리 우리 언론은 피해자와 유가족을 접촉해 감정적ㆍ정서적 보도를 쏟아낸다. 이태원 참사를 다루면서도 이런 보도행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추락한 언론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 걸음은 참사 현장에서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상처를 세심하게 헤아리는 마음가짐이다.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절제의 미덕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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