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매운동의 피해자들

[언론 다시보기]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최근 한국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은 후 친구가 “후식은 파리바게뜨에서 먹자”고 했다. 파리바게뜨 점주가 지인인데 갑자기 매출이 떨어져 도와주고 싶다는 것이다. 가보니 역시 매장에 손님이 없고 곧 영업 마감 시간인데 많은 빵이 남아 있었다. 점주는 케이크와 커피를 주문한 우리를 보고 힘없이 웃어줬다.


SPC 계열사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진 사고를 계기로 시작한 SPC 상품 불매운동의 영향이다. 한산한 파리바게뜨 매장을 보고 “점주는 무슨 죄냐”고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파리바게뜨 가맹점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가량 떨어졌다고 한다. 가맹점의 어려운 상황이 전해지면서 본사에서 반품 처리를 하기로 했다는 보도를 보고 조금 마음이 놓였다.


이번 불매운동은 지나친 보도가 부추긴 면도 있는 것 같다. 특히 ‘피 묻은 빵’이라는 말은 소비자 심리에 크게 영향을 줬을 것이다. 사고와 SPC그룹의 태도에 분노하고 ‘나는 안 사겠다’고 개인이 판단할 수 있지만, 언론이 자극적인 표현으로 불매운동을 부추기는 것에 의문을 느낀다.


내가 불매운동에 예민한 건 2019년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시행했을 때 한국에서 일어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기억 때문이다. 지금은 가라앉았지만 당시 재한 일본인뿐만 아니라 일본 관련 일을 하는 한국사람도 피해를 입었다. 나 또한 한국에서 일본 관련 기사나 책을 쓰는 입장에서 불매 대상이 되는 것 아닌가 마음이 불편했다. 개인적으로 강제징용 문제로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본 정부는 수출 규제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해도 소용이 없다.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불매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SPC 불매운동을 보면서 먼저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들부터 떠올리게 됐다.


한국에서는 항의 뜻으로 불매운동이 자주 있지만 일본에서는 별로 없다. 2002년 내가 처음 한국에 유학할 때 만난 한국 친구 중에 “맥도날드는 미국 거라 안 간다”고 하고 롯데리아로 가는 친구가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 물어봤더니 주한미군 장갑차에 한국 여중생 두 명이 깔려 숨진 사고에 대한 항의의 뜻이라고 했다. 당시 내 주변 일본 대학생들은 대부분 사회적인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그런 대화를 나누는 일도 거의 없었다. 한국 대학생은 다르다고 느낀 순간이었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내 앞에서 당당하게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참여했다고 이야기하는 한국 친구들은 일본 정부에 항의의 뜻을 전하기 위해 뭐라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의도에 나도 공감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는지 불매운동을 접할 때마다 복잡한 심정이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계기가 된 수출 규제는 원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이었다. 근본적인 문제인 강제징용 문제는 아직 진전 없는 상태로 남아있다. 불매운동으로 일본 정부가 반성을 한 것 같진 않다. 불매운동은 시간이 지나 사그라지고 오히려 요즘은 무비자로 일본에 갈 수 있게 돼서 일본에 대한 관심이 또다시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이번 SPL 공장 사고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시적인 분노 표현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는 기업이 되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까지 감시하는 것이 언론이 해야 하는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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