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을 인정하고 그 어둠을 벗겨내는 게 철학 아닐까요"

[와이드 인터뷰] '우주철학서설' 펴낸 기자 출신 언론학자 손석춘 교수

“인간이란 무엇인가. 철학의 오랜 물음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손석춘 교수는 ‘우주철학서설’ 맺음말을 이렇게 시작했다. 기자, 언론노동운동가, 언론학자, 칼럼니스트로 살아온 손 교수가 철학책을 냈다. 그는 책에서 ‘지금까지 철학은 우주를 망각했다’고 단언하며 ‘우주철학(cosmic philosophy)’을 제안했다.

“책 쓰고 나서 이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해야 할 일 하나를 마친 것 같아요. 제 대표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78년 철학과에 들어간 손 교수는 학생운동 틈틈이 ‘새로운 선험철학’을 구상했다. 자본주의 밀림에서 옹근 40년 언론노동을 하는 내내 이 철학적 명제를 붙들었다. 지난 13일 한국기자협회 회의실에서 만난 손 교수는 “우주철학은 과학에 근거한 자기 성찰을 출발점으로 한다”면서 “동시대인의 의식을 오도하는 언론을 비판하는 철학자가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우주에는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 넘쳐나고 인간의 인식에 어둠이 있죠. 우리가 모르는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고 끝없이 그 어둠을 벗겨내려고 하는 게 철학이 아닐까요.” ‘우주철학서설’을 펴낸 손석춘 교수가 지난 1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3층 한국기자협회 회의실에서 기자협회보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대학시절 새로운 선험철학 구상

-가장 애착이 가는 저작인 것 같습니다.
“철학을 전공하면서 가졌던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칸트의 선험철학이 과학의 성과를 담아내지 못했다는 거였죠. 그래서 새로운 선험철학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착상을 했었는데요. 기자 생활하고, 언론 운동하고, 싱크탱크 만들어 새로운 사회를 탐색할 때도 그런 문제의식이 꿈틀거렸죠.”

-철학이 교수님 생애에 걸쳐 영향을 미쳤군요.
“철학과에 들어갔지만 온전히 몰입할 수 없었어요. 군부독재 시절이었거든요. 비합법 서클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칸트와 니체, 마르크스 철학에 심취했어요. 철학적 사색을 수첩에 적는 습관도 있었는데, 당시 수첩에 ‘왜 무가 아니라 존재인가’ ‘인간사회의 이상적 모델은 어떤 것인가’ ‘우주와 역사에서 인간의 목표와 의미’ 등이 적혀 있었죠.”

-철학으로 진로를 선택할 법도 하셨는데요.
“철학과 교수들이 대학원 진학을 적극 권하셨죠. 제가 진학을 안 한다고 하니 은사인 박동환 교수님이 ‘왜 대학원 진학을 안 하느냐’고 물으셨어요. ‘등록금 내고 철학 공부하느니 그 돈으로 책 사서 혼자 공부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얘기했어요. 제가 그때 참 모질었죠(웃음). 교수님이 충격을 받았는지 아무 말씀 안 하시더군요. 다음날은 박영식 교수가 교무처에 자리를 마련해 줄테니 대학원에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근데 저는 군부독재에 침묵하는 ‘강단철학’에 미련이 없었어요. 지금은 박동환 선생님의 배려에 뒤늦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철학책을 냈나요?
“비합법 서클에서 운동하면서 마르크스 철학을 공부했는데, 마르크스 철학으로 해결이 안 되는 문제들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1987년 6월 항쟁이 나고 대학원에 갈 만도 하다 싶었어요. 대학 때 구상한 문제의식이 계속 남아 있었던 거죠. 대학원에서 마르크스와 하버마스의 사회철학을 기반으로 정치학 석사와 언론학 박사 논문을 썼습니다. 인식론을 본격적으로 정리하지 못했다는 부담감이 늘 있었죠. 틈틈이 철학을 공부하고 그러다가 작심하고 쓰게 된 거죠. 쓰는 데 정말 오래 걸렸어요. 정성 들여 썼고 퇴고도 많이 했죠.”

-생애작으로 말씀했는데, 책 소개는 많이 안 됐네요?
“우리 학계와 학술계, 그리고 학술담당 기자들 사이에도 약간의 사대성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삶의 현실에 밑절미를 두고 독창적으로 사유한 철학에 대해 낮춰보려는 경향이 있어요. 반면 외국의 어떤 학자가 쓰면 뭔가 있는 거처럼 짚죠. 제가 사대성이 있다고 얘기를 하면 학술담당 기자들이 싫어할 거예요. 근데 한번 생각해봤으면 싶어요. 우리 현실에 바탕을 둔 사회철학도 보편성을 띨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다 들춰본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의 독창성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얼마든지 소통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자부해요.”

"지금까지 철학은 우주를 망각했다"

-교수님의 ‘우주철학’은 과학의 성취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중·후반 이후에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했어요. 인류가 알고 있던 우주관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어요. 그런데 그런 변화를 담아내는 철학은 없었다고 생각해요. 유럽의 근대철학이 당시 발전하고 있던 과학의 성과를 받아들이면서 새롭게 시작됐듯이 21세기 이후 철학은 현대과학이 밝혀낸 과학적 바탕 위에서 사유의 지평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주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데 우주철학을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주철학을 이야기해야죠. 가령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만 봐도 우주 과학이 아무리 발전을 하더라도 가까운 시일 안에 해명하기 어려울 것 같거든요. 우주에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 넘쳐나고 인간의 인식에 어둠이 있죠. 우리가 모르는 영역이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끝없이 그 어둠을 벗겨내려고 하는 게 철학이 아닐까 생각해요.”

-간명하게 우주철학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주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거든요. 인간이 우주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죠. 권력자들, 사회개혁에 저항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우주 속의 존재라는 사실을 안다면 좀 다르게 살아갈 것 같아요. 사회개혁 주체들도 독선에서 벗어나 성찰할 수 있죠.”

-책에서 “모든 인간은 우주인(cosmic people)이다”고 했는데, 잘 와닿지 않습니다.
“그렇죠. 황당해 보이지만 우리가 사실은 물리적으로 우주인이죠.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들은 별이 죽은 잔해에서 왔어요. 우주에서 지구 자체가 해와 함께 빠르게 돌고 있는 ‘우주선’이죠. 제가 우주인이라고 얘기한 것은 인간은 언젠가 태어났듯이 언젠가 미래에 죽는 존재이거든요. 그런 속에서 우리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자기한테 주어져 있는 시간 동안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잘 안돼요. 이런저런 일에 상처받고 살아가는 거죠.”

손 교수는 대학 시절 철학적 사색을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다. “왜 무가 아니라 존재인가” “인간사회의 이상적 모델은 어떤 것인가”라는 물음들이 보인다. /손석춘 제공


-언론 비평을 꾸준히 해오셨는데, 언론 비평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정파나 이념의 구분을 넘어 저널리즘 철학에 근거해 언론을 평가해야죠. 진실과 공정, 권력 감시 세 가지로 간추릴 수 있어요. 진실은 숨어 있는 사실을 규명하고 사실들의 연관성을 드러내는 것이죠. 공정은 기계적 균형만이 아니라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 그렇게 해야 소통권이 상대적으로 고를 수 있기 때문이죠. 정치권력 못지않게 경제권력, 문화권력, 사회권력, 종교권력이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데 그런 권력 감시를 잘하고 있느냐도 살펴봐야죠.”

-2020년 2월 KBS 저널리즘 토크쇼J는 왜 자진 하차하셨나요?
“저는 평생 그런 모욕을 처음 당해봤어요.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문파’의 인신공격이 빗발쳤어요.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요. 사실관계를 설명해도 들으려 하지 않았어요. 인신공격이 이어지자 제작진이 문파에 휘둘리더군요. 그만두는 과정에서 KBS 고위 간부를 만났어요. 그분이 ‘손 선배는 보수와 진보가 아니라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해서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뼛속 깊이 좌파라는 걸 잘 안다’고 하더군요. 마르크스 평전을 썼다고 좌파일까. 저는 니체도 좋아하는데. 그 말 듣고 이상하다 싶었어요. 언론인으로서 제 정체성은 좌파가 아니에요. 우리 사회는 좌우로 나눠 갈등을 일으키잖아요. 이젠 좌와 우를 넘어서는 사유를 했으면 해요. 좌파라서 언론비평을 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조·중·동 비판하는 게 좌파거나 친민주당이어서가 아니라는 거죠. 저는 민주주의에 철학적 바탕을 두고 언론비평을 한다는 걸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교수님은 2021년 9월에 펴낸 ‘미디어 리터러시의 혁명’에서 “2020년대 한국인은 ‘총체적 언론불신 시대’를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언론불신의 원인을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저는 언론이 자본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1991년 동아일보에서 나올 때도 그런 문제의식을 알리고 싶어서였고요. 언론이 자본에 종속돼 있다고 하면 원론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자본은 언론사 내부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요. 광고를 통한 통제만도 아니죠. 클릭수를 의식해 자극적인 기사를 쓰게끔 하는 것도 자본이 추동해 나가는 힘이죠. 거기에 맞서 언론노조와 기자협회가 잘 응전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91년 8월14일자 기자협회보에 실린 손석춘 동아일보 기자의 글 ‘숨은 권력과 편집국 민주주의’. 그는 글에서 편집권을 유린한 동아일보사 자본가를 ‘숨은 권력’으로 비판하며 언론자본가의 편집권 유린이 단순히 동아일보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언론이 직면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사 자본가를 '숨은 권력'으로 비판

손 교수는 1991년 8월1일 동아일보가 김중배 편집국장을 임기 중에 돌연 해임한 데 반발하며 기자협회보에 ‘숨은 권력과 편집국 민주주의’(1991년 8월14일자)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당시 동아일보 평기자였던 그는 글에서 편집권을 유린한 동아일보사 자본가를 ‘숨은 권력’으로 비판하며 언론자본가의 편집권 유린이 단순히 동아일보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언론이 직면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해 9월6일 김중배 국장이 국장 이·취임식에서 “1990년대 들어 언론이 이제 권력보다 더 원천적이고 영구적인 제약세력인 자본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밝히며 사표를 던지자 동반 사표를 썼다.

-실명을 걸고 글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당시 기자협회보 박인규 편집국장이 괜찮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저는 그만둘 각오도 돼 있다고 했어요. 기자협회보 나오는 날 편집국에 앉아있었어요. 아무도 얘기를 걸지 않더군요. 사무실이 좁았거든요. 제 뒤로 가면서 어깨를 살짝 치고 나가는 사람도 없었어요. 예상과는 달랐어요. ‘내가 잘못했나’ ‘기자협회보에 쓰지 말아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썼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결혼도 했고, 어린아이들도 있었는데.
“9월6일 오전에 김중배 국장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오늘 동아일보에 사표 내겠다고. 저도 사표 내겠다고 했더니 ‘이 사람아 당신은 내면 안 돼’라고 하시더군요. 불의를 참으며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기자 생활 안 해도 다른 일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요. 사표 내고 집에 갔더니 아내가 깜짝 놀라더군요(웃음).”

-지금 ‘숨은 권력과 편집국 민주주의’를 읽어 봐도 틀린 말이 없어요. 근데 어떻게 된 게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세계적으로도 쉽지 않죠. 자본주의 사회니까. 현직 기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안정된 일터에 다니면서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미덕인 직업은 저는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기자들 위상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기자직만큼 진실하고 공정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게 미덕인 직업은 없죠. 꼭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기자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통령 비속어 발언 자막 보도 이후 정치권력이 MBC에 대한 전방위 압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1세기에 정치권력이 노골적으로 언론자유를 침해할 줄 몰랐습니다.
“MBC가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철학을 확인시켜 나간다면 잘 이겨내리라 생각해요. 안에서 자꾸 권력의 개입을 바라는 식으로 흔들고 조·중·동 신방복합체, 특히 조선일보가 확대하고 있는데 동요하지 않았으면 싶어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니체의 경구를 인용해 “조·중·동 신방복합체의 오만 못지않게 ‘깨시민’의 자만이 우리 미디어의 미래, 민중의 내일을 어둡게 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깨어 있는 시민, 곧 ‘깨시민’을 의식하고 작심하고 한 말입니다. 조국 사태 초기에 조국 수호를 내걸고 검찰청사 앞에 모인 촛불들을 보고 솔직히 저는 경악했어요. 촛불마저 정파에 물든 징후였죠. ‘촛불의 촛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원 진학을 권유받았는데 왜 기자의 길을 선택했나요?
“대학 1학년 때 학생운동 선배를 따라갔다가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을 만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기념식이었던 같아요. 모임이 끝나고 점심을 먹는데,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이 대학생 왔다며 제 주위로 앉으셨어요. 제가 철학 공부하고 있다고 하니 한 분이 기자를 하라고 그러더군요. 신문사 안에 들어가서 싸우는 사람이 있어야 우리도 복직할 수 있다며 기자가 될 것을 권했어요. 80년 5·18 때 언론이 진실을 전혀 보도하지 않는 모습도 언론계 선택에 영향을 끼쳤어요.”

손 교수는 한국경제신문(1984~1987), 동아일보(1987~1991), 한겨레신문(1991~2004)에서 20년 간 기자로 일했다. 2005년 신자유주의 대안을 연구하는 사단법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과 이사장을 역임했고, 2011년 건국대로 옮겨 언론학, 문학,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우주철학서설’을 펴낸 손석춘 교수가 지난 13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13층 한국기자협회 회의실에서 기자협회보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젊은 논객 손석춘 한겨레에 사표

-2004년 한겨레를 떠날 때 아픔이 컸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한겨레 경영이 어려웠어요. 재정이 바닥나 구조조정 얘기가 나왔어요. 구성원들의 의견이 갈렸고, 투표에 부쳤는데 구조조정 방안이 통과됐어요. 한겨레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후배들에게 알리고 싶어 사표를 냈어요. 사옥 계단을 내려오는데 눈물이 뚝 떨어지더라고요. (손 교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1991년 공덕동 새 사옥에 입주할 때 그 계단을 오르면서 ‘민중에게 헌신하겠다’고 했는데….” 구조조정으로 2004년 11월부터 두 달간 80여명이 한겨레를 떠났다.

-‘10대와 통하는 미디어’ 등 초등학생과 중고생을 위한 책도 펴냈는데.
“저도 예순이 넘었지만 살다 보면 사람들 생각이 잘 변하지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생각을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디어와 철학에 대한 이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2001년 장편소설 ‘아름다운 집’을 발표한 이후 ‘유령의 사랑’ ‘파란 구리 반지’에 이어 2020년엔 ‘호랑이 눈썹’을 냈는데 소설을 쓰는 이유가 있을까요.
“장편소설을 9권 썼어요(웃음).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서죠. 칼럼이나 딱딱한 학술서로는 다가설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제 생각을 소설을 통해 좀 더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지금도 쓰고 있어요(웃음). 이번에는 좀 잘 쓰려고 해요.”

-저작이 100여권 가까이 되는 것 같아요.
“100권은 아니구요. 단독저서 65권, 공저를 포함해 80여권을 냈어요. 독자가 가장 많은 책은 ‘신문읽기의 혁명’입니다. 1997년 초판, 2003년 개정판, 2017년 재개정판이 나왔어요. 첫 소설 ‘아름다운 집’도 20쇄가 넘었어요. 각각 26년, 22년째 독자들과 만나고 있죠.”

-칼럼니스트, 소설가, 언론학자, 미디어비평가, 철학자 중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철학과를 나왔고, 철학 주제로 학술 논문도 몇 편 썼고, 책도 냈고 그래서 철학자로 불리고 싶어요. 앞으로 철학자로 살려고요. 한국 사회의 현실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철학자가 있다는 걸, 동시대인의 의식을 오도하는 언론을 비판하는 철학자가 있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어요.”

-요즘에 기자들, 특히 젊은 기자들이 언론계를 많이 떠나고 있습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밝게 해보려고 들어온 기자들이 좌절하고 있어요. 자본의 문제죠. 자본의 논리를 무분별하게 추종해 간 선배들의 잘못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기자들이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좌절감이 들고 현실에 갈등이 있더라도 기사를 통해 세상을 밝게 해보려고, 어둠을 밝히고 싶어 선택했던 처음을 떠올렸으면 싶어요. 진실과 공정, 권력 감시라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직업이 기자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언론사를 나왔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면 절대 떠나지 않았을 거예요. 기자를 천직으로 생각했었고, 그래서 지금도 글 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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