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분노에도 무감각한 세계일보 경영진 각성해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세계일보 구성원들이 8월부터 사측의 변화를 촉구하는 기수 릴레이 성명을 이어가고 있다. 사측이 제시한 임금 인상안에 대한 불만이 직접적인 촉매가 됐다. 앞서 세계일보는 2021년 10년래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했음에도 2022년 임금 인상률을 전년과 같은 2.5%로 일방적으로 확정해 통보했다. 2018년 정희택 사장 취임 이후 5년 내내 0~2%대에 머물고 있는 인상률 자체도 문제지만, 저임금에 따른 인력 이탈과 신문의 질 저하가 심각해지고 있는 데도 무감각한 경영진에 기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하지만 지난 두 달 간, 세계일보 용산 사옥 32층 벽면에 붙은 대자보가 여섯 장으로 늘어나는 동안에도 세계일보 경영진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이번 릴레이 성명이 지난 4월 한국기자협회 세계일보지회가 낸 성명서의 후속 대응 차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반 년째 계속되는 요구에도 꿈쩍 않는 셈이다. 실제 정희택 사장과 사측은 “소통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올해 세팅된 건 중간에 변경할 수 없다”고 한다. 왜 변경할 수 없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 사측은 기자들을 향해 편집국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12월 리틀엔젤스예술단 창단 60주년 기념 공연에 정관계 인사를 초청하라는 ‘동원령’까지 내렸다. 과연 사측은 기자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알고 있기는 한 건지, 구성원들과 갈등을 해소할 의지가 있기는 한 건지 의심되는 지점이다.


우리는 이번 사안이 단순히 한 회사와 구성원 간의 연봉 협상 문제로 좁혀 바라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언론 조직이 세계일보와 비슷한 인력 이탈과 신문의 질 저하 등의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노조는 지난 6월 최근 10년간 입사한 기자 106명 가운데 40명이 퇴사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회사에 임금 인상을 요구한 바 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언론의 위상은 나날이 떨어지는데 급여를 비롯한 노동 여건조차 만족스럽지 못하니 기자들은 하나둘 언론사를 떠날 결심을 한다.


좋은 기자가 좋은 언론을 만든다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언론 조직의 저임금 기조와 소통·비전 부재 등으로 기자들이 이탈하는 현상은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다. 그렇기에 세계일보 기자들의 릴레이 성명을 지지하고 기자 사회의 연대를 촉구하는 바이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세계일보 경영진이 기자들과 소통하겠다는 약속을 성실하게 지켜나가길 바란다. 경영진의 책임 회피는 언론으로서도 부적절하다는 판단이다. 구성원들의 절박한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 언론이 과연 사회 곳곳의 작은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해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또 세계일보 기자들의 성명서에 따르면 회사가 지출한 교육훈련비는 2017년 9099만원에서 지난해 1014만원으로 4년간 88.9%가 줄었다. 과연 세계일보는 좋은 기자가 자라날 수 있는 토대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경영진은 성실히 응답해야 할 일이다.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한국의 언론 환경에서 다가올 위험에 대비해 가능한 한 허리띠를 졸라 매겠다는 회사 측의 입장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전부인 조직에서 사람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다가오는 미래는 암울할 따름이다. 세계일보 경영진이 이런 기자들의 절박한 호소에 진지하게 접근하기를, 그래서 비슷한 곤란을 겪고 있는 타사에도 귀감이 될 수 있는 긍정적인 합의점을 도출해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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