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계의 '회색지대' 근로자

[이슈 인사이드 | 스포츠] 김용일 스포츠서울 기자

김용일 스포츠서울 기자

프로스포츠계 근로자성 분쟁 불길이 커지고 있다. 지난 14일 시민단체 권리찾기유니온은 서울 용산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포츠산업 종사자가 회사 지시를 받지만, 개인사업자로 계약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노동자 권리를 회복하는 사회 연대 운동을 열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우정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 유스팀 전 감독은 “2007년 입사해 정해진 시간에 사무실로 출퇴근하고 구단 차량을 이용할 때도 구단 허락을 받아야 했다”며 “14년간 일한 내게 계약 만료를 통보한 구단은 프리랜서란 이유로 퇴직금을 줄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최근 프로스포츠계에서는 이른바 ‘회색지대’에 놓인 직군의 종사자가 구단에 퇴직금 지급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해 법적 공방을 벌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부분 감독, 코치 등 지도자다. 구단은 이들이 업무 재량권이 주어지는 개인사업자(업무 위탁계약 또는 위임계약 형태)여서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선수단 운영에 전권을 매기고 목표를 통해 평가받는 지도자를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 형태로 고용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반면 지도자는 개인사업자 형태여도 구단에 종속돼 근무하기에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며 맞서고 있다.


근래 들어 e스포츠 프로게임 A구단 감독, 프로농구 B구단 트레이너 등이 퇴직금 지급 청구 소송을 벌였다가 승소한 적이 있다. 구단은 이들과 용역계약을 맺었을 뿐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면서 퇴직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했으나 법원은 노동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문을 냈다. 실제 계약 형식보다 실제 근로 형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지난해 프로농구 D구단 트레이너는 1심에서 근로자성을 인정받았으나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D트레이너가 감독, 코치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구단에 종속돼 근무했다고 볼 수 없다며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처럼 프로스포츠 종사자의 근로자성 인정에 대한 법원 판결은 지속해서 엇갈린다. 근로자성 법적 판단 기준으로는 △근무시간·장소 구속 △업무 내용 규정 △기본급·고정급 지정 등 9가지 요소로 알려져 있다. 주요 프로스포츠 단체는 구단과 지도자의 근로자성 분쟁 예방을 위해 개인사업자 형태로 계약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구단마다 지도자를 고용할 때 형태는 물론 계약 조건 등이 다르다. 법적 판단 기준 등을 적확하게 대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가장 현실적인 건 명확한 근무 형태를 보장하는 것이다. 프로축구 E구단은 개인사업자 계약을 맺은 지도자에 대한 간섭이나 통제를 막기 위해 별도 담당자를 두고 체크리스트로 근거 자료를 남기고 있다. 또 이별할 때는 양측 입장을 미리 공유하고 적정 수준 위로금을 지급하거나 다른 일자리를 소개한다. 사실상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근로자성 분쟁에 명확한 답은 없지만 지혜를 발휘할 순 있다는 얘기다. 회색지대 근로자를 보호하고 유연하게 소통하는 건 어느 산업이든 미래 지향적 가치를 안겨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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