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방실 KBS 기상전문기자의 노트북엔 이런 스티커가 붙어있다. ‘78°N SVALVARD’. 북위 78도 지구 최북단, 북극해 한가운데에 자리한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제도를 뜻한다. 신 기자는 기후변화 최전선으로 불리는 이곳을 지난 7월 다녀왔다. 국내 언론사 기상전문기자가 북극 현지를 취재한 건 그가 처음이다.
신 기자에게 북극은 꿈의 무대였다. 대학에서 수학과 대기과학을 전공하고 과학동아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2008년 KBS 면접장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북극과 남극을 직접 취재하는 기상전문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KBS 입사 후 10년이 넘는 기간 두 극지를 취재할 기회를 잡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시기 문제가 컸다. 추위를 피해 북극은 7~8월, 남극은 12월이 취재 적기다. 하지만 국내에서 태풍이나 한파, 폭설을 대비해야 하는 기상전문기자가 가장 바쁜 때라 자리를 비우기 어려웠다.
가능성은 작아도 신 기자는 꾸준히 문을 두드렸다. 올해는 스발바르제도에 있는 우리나라 다산과학기지 개소 20주년이라는 명분을 더해 북극 취재 기획안을 냈다. 그리고 덜컥, 승인이 났다.
“취재해보라고 하시길래 이게 정말인가, 제 귀를 의심했어요. 워낙 큰 비용이 드니까 잘 해내지 못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야 다음에 후배들도 갈 기회가 생길 테고요. 결재받고 정말 미친 듯이 준비했어요.(웃음)”
지난 5월부터 사전취재를 시작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구체적인 취재 현장을 정하고 출발 시기를 7월 초로 정했다. 6월 한 달은 국내 각 분야 전문가들을 심층 인터뷰해 자료를 모았다. 그사이 현지·해외 인터뷰이들에게 접촉해 일정을 조율하고, 항공권과 숙박할 곳도 예약했다.
드디어 7월6일, 출국하는 날이었다. 신 기자와 촬영기자 2명은 카메라, 취재 장비 등을 실은 캐리어 8개를 들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진 못했다. 노르웨이 수도인 오슬로에서 스발바르제도로 향하는 유일한 항공편이 항공사 파업으로 결항한 것이다.
“너무 절망적이었어요. 하지만 오래 준비했는데,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어요.” 일주일 뒤 다시 오슬로행 티켓을 끊었다. 파업이 끝날 기미가 보이진 않았지만, 일단 가서 부딪혀보기로 했다. 항공사 카운터 앞에서 신 기자는 손짓 발짓까지 동원해 ‘스발바르에 꼭 가야 한다’고 호소했고, 이튿날 극적으로 비행기 한 대가 떴다.
직접 마주한 북극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풍경이었다. 스발바르지역의 여름철 평균 기온은 영상 6도인데, 신 기자가 찾은 날은 영상 20도였다. 심지어 모기떼까지 극성이었다. 현지 취재에 동행한 남승일 극지연구소 빙하환경연구본부 박사는 20년 동안 스발바르를 오갔지만, 모기를 처음 본다고 할 정도였다.
빙하는 산꼭대기에 위태롭게 남아 있었다. 눈이 쌓여있었어야 할 지면은 갯벌처럼 변해있었다. 녹지 않는 땅이었던 영구동토층까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이 처참한 모습은 지난달 16~18일 KBS 뉴스9에서 <‘코드 레드’ 북극에 가다> 연속보도로, 같은 달 23일 시사기획 창 <고장난 심장, 북극의 경고> 다큐멘터리에 담겨 방송됐다.
“취재하는 2주 동안 몸은 고됐지만 북극에 왔다는 것 자체가 기뻤어요. 오랜 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심각한 기후변화를 체감하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북극의 현실은 지난달 수도권에 115년 만에 내린 폭우와도 바로 연결돼요. 기후위기가 북극곰에게뿐 아니라 우리 눈앞에 와 있는 거죠.”
신 기자는 최근 한두 해 사이 기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높아져 다행이라고 했다. 특히 여러 언론이 기후·환경전담기자를 확대하거나 관련 기획을 잇달아 선보이는 것도 긍정적인 변화다. “KBS에선 기후·환경보도를 예전보다 앞 시간대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중요도가 올라간 거죠. 우리 언론계 전반이 이 문제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함께 키워가면 더욱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거라고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