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알고리즘의 기사 유통 독점은 '위헌'적, 규제 필요하다"

전직 사법전문기자, 논문서 '헌법 제21조 제3항' 근거해 알고리즘 규제 입법 가능성 검토

포털은 언론인가 아닌가. 포털의 뉴스 알고리즘은 규제 대상인가 아닌가. 국민 10명 중 7명이 포털을 통해 뉴스를 보는 사회에서 여론을 ‘지배’한다는 네이버 등 포털을 견제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있었다. 알고리즘은 죄가 없다거나, 도덕관념이 없다는 등 알고리즘에 유무죄와 윤리성을 따지는 주장들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들고나온 포털 뉴스 알고리즘 규제 법안은 위헌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렇다면 알고리즘을 규제하는 입법은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가. 여기, 헌법적 관점에서 “불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여론의 다양성을 구현하기 위해 규제가 필요한 대상은 윤전기가 아니라 알고리즘”이라는 것이다.

20년 가까이 법조 분야를 취재한 사법전문기자 출신의 이범준 전 경향신문 기자는 최근 서울대 기술과법센터의 ‘LAW & TECHNOLOGY(로 앤 테크놀로지)’ 5월호(제18권 제3호)에 기고한 ‘알고리즘과 저널리즘’이란 논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 전 기자는 올봄 경향신문을 퇴사하고 현재 서울대 법대에서 헌법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소셜미디어들. (연합뉴스)

IT 대기업, 불투명한 알고리즘이 뉴스 유통을 독점

이 전 기자는 알고리즘 규제의 근거로 헌법 제21조 제3항을 든다.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제3항은 “통신·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되어 있다. 이 조항을 두고 헌법재판소는 2006년 판결(2005헌마165 등)에서 “여기서 ‘신문의 기능’이란 주로 민주적 의사 형성에 있고, 그것은 다원주의를 본질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다양성 보장을 불가결의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란 결국 ‘신문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하여’란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고 해석한 바 있다.

즉, 민주주의 사회와 신문 기능의 본질은 다양성에 있는데 “뉴스 유통에 기술 대기업과 알고리즘이 개입하면서 의견의 다양성 시장이 붕괴됐”고, 따라서 “알고리즘의 기사 유통 독점은 위헌적인 상태”라는 게 이 전 기자의 주장이다.

또한, 그는 헌법재판소 1992년 선고(89헌가104)를 근거로 “‘신문의 기능’이란 자유로운 권력 비판을 보장하는 기술적, 산업적 토대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며 “기술 대기업과 이들의 산업적 기반인 알고리즘이 포함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사기업인 신문사가 윤전기라는 여론 유통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기에 법률의 규제를 받아온 것”이므로 “이제는 그 규제가 기술 대기업과 알고리즘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고리즘 문제의 핵심은 불투명성에 있다.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나 조작 가능성이 종종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전 기자는 “알고리즘이 어떠한 요소에 근거해 실행되고 어떤 메커니즘으로 기사를 선별하는지 공개되어 있지 않다. 이에 반해 레거시 미디어인 신문사와 방송사는 누가 뉴스를 에디팅하는지 밝히고 있으며 논리적 근거도 밝힌다. 신문 마지막 면에는 편집인, 편집국장, 신문국장, 논설실장 이름이 적혀 있고 사설에서는 언론사의 태도를 밝힌다”고 했다.

국내외에 알고리즘을 공개하도록 법으로 규제한 입법례는 없다. “영업비밀에 속하는 것이어서 공개를 강제하기가 어렵지만 가능하다고 해도 공정성을 판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알고리즘 시스템을 규제하는 사례는 있다. 알고리즘 설명가능성(explainability)을 도입한 EU 일반데이터보호규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GDPR)이 그것이다. 이 전 기자는 “알고리즘 투명성 문제는 ‘신문의 기능’을 시대에 맞게 해석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헌법 제21조를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알고리즘 공개를 비롯한 규제 입법 역시 불가능하지 않다”고 밝혔다.

“저널리즘의 위기, 사악한 알고리즘 아닌 게으른 저널리즘 때문”

그는 “헌법이 예정한 의견의 다양성과 권력 비판을 보장하기 위해 여론의 주요한 채널이 된 알고리즘을 규제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것이 헌법이 예정한 민주주의를 건전하게 작동시키는 길”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알고리즘이 여론을 극단적으로 갈라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온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레거시 미디어야말로 편향됐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알고리즘 기반 미디어 환경이 민주주의를 약화한다는 주장의 골자는, 의견과 의견이 제대로 부닥치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정치가 갈등에 대응하지 못하는 책임을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묻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넷 미디어 환경이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라기보다 의회 정치의 실패가 인터넷 미디어에서 드러난 것”이란 주장이다.

이범준 전 경향신문 기자

이어 “그런데도 레거시 미디어는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알고리즘 때문에, 시민들이 편향된 시각을 갖게 되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토론하지 않으며, 민주주의도 위기에 빠진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알고리즘이 어떤 기사를 반복해서 노출한다는 이유만으로, 미디어들이 저널리즘의 위기를 호소하고 제 입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주장하는 것은 게으른 자기부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수용자들은 더는 제목뿐인 기사, 깊이 없는 기사에 돈과 시간을 쓰지 않는다. 공급자와 수용자가 구분되지 않는 단편적인 기사로는 저널리즘의 역할을 하기 어렵다. 수용자가 적극적으로 원하는 탐사보도를 비롯한 고품질 저널리즘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미디어는 도태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사악한 알고리즘 때문이 아니라 게으른 저널리즘 때문이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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