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고 소란스런 세상… 어떻게 글을 안 쓸 수 있겠나요"

[기자 그 후] (38) 이윤주 한겨레출판 편집자·작가(전 아시아경제 기자)

저마다 속상한 마음을 푸는 방법이 있다. 화끈하게 매운 음식과 맥주 한 잔 또는 달달한 케이크와 커피. 누구는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혼자 걷거나, 친구와 수다 떨며 아픈 마음을 달랠 것이다. 한겨레출판에서 편집자로 일하는 이윤주<사진>씨는 속상한 일이 생기면 이렇게 생각한다. ‘괜찮아, 이따 집에 가서 글 쓰면 돼.’ 윤주씨에게 직접 물었다. 정말 속상할 때 글을 쓴다고요? 그의 답은 분명했다. “이렇게 불안하고 소란한 세상에서,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윤주씨는 2016년에 출판 편집자가 됐다. 34살, 늦깎이 신입이었다. 그전에는 4년간 기자였고, 또 그 이전에는 고등학교에서 국어와 문학을 가르쳤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것부터 국어 교사, 기자, 편집자까지 세 직업 모두 ‘글’과 맞닿아 있다. 글쓰기가 일상이자 위로인 그에겐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기자가 된 건 4년간의 기간제교사 생활을 마친 직후였다. 내향적인 성격에 말보다 글이 편한 윤주씨에게 교단은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가르치는 일보다는 곁다리로 맡은 교지편집부 담당교사가 자신에게 더 맞는 옷 같았다. 주객이 전도됐다는 생각에 임용고시 응시를 포기했다. 학교를 나오고 우연히 접한 채용공고가 그의 세상을 바꿔 놓았다. 아시아경제 교열기자 채용. 글을 다루는 ‘교열’ 기자니까, 잘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기자가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국어 교사와 기자는 전혀 다른 업종이잖아요. 언론계 입사 장벽이 되게 높은데, 돌아보니 그때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신문사 교열팀에 속한 그는 지면과 온라인에 실리는 모든 기사를 들여다봤다. 오탈자를 바로잡고 문장을 다듬었다. 그러다 보니 궁금해졌다. 기사를 보는 것 말고 직접 쓰는 건 어떤 기분일까. 매체에 실리는 기사의 영향력과 성취감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또 한 번 용기가 불끈했다. 취재부서에 가고 싶다고 손을 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열 전담 기자가 취재부서로 이동하는 건 이례적이다. 이번에도, 운이 좋았다.


취재현장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곳을 갔고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났다. 직접 쓴 기사가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때 보람을 느꼈다. 재밌는 순간도 많았다. 그런데 그의 도전정신은 나날이 작아지고 있었다. 밖으로 내뿜어져야 할 에너지는 자꾸 안으로 파고들었다. 복작복작한 취재현장이 버거워졌다. 취재를 마치고 혼자 컴퓨터 앞에서 기사를 쓰는 순간 숨통이 트였다. 특히 책만 펼치면 되는, 서평 기사를 쓸 때가 제일 행복했다.


“이렇게 역동적인 경험을 어디서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그 역동성 때문에 나가떨어지겠다는 우려가 항상 충돌했던 것 같아요. 정식 루트를 밟지 않은 늦깎이 기자니까, 나의 내향적인 성격 때문에 더 힘든 게 아닌가. 자책했던 시간이었어요.”


생각이 쌓이고 또 쌓였다. 그러다 대책 없이 기자를 그만뒀다. 하나는 확실했다. ‘내가 쓰고 싶은 건 기사가 아니구나. 은유와 상징이 팩트를 넘어서는 글, 다시 문학으로 돌아가야겠다.’ 이제야 그에게 맞는 직업을 떠올렸다. 출판 편집자였다. 책 한 권이 완성되기까지 모든 공정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작가와 독자, 디자이너, 인쇄소를 잇고, 보도자료 작성처럼 책을 홍보하는 업무도 맡는다. 직접 책을 기획해 작가를 찾고 원고를 써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편집자의 몫이다.


윤주씨는 돌고 돌아 드디어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다. 물론 지금도 왜 이것밖에 못 할까 스스로 타박하지만, 책 속에 둘러싸여 사는 지금 행복을 느낀다. “출판 편집자는 저라는 사람이 무언가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직업이에요. 부족한 게 많아도 아주 가끔은 ‘그래도 잘하고 있네’라는 생각을 한답니다.”


글과 책 속에서 살아온 윤주씨는 2019년 에세이 작가로도 데뷔했다. 말로는 내뱉을 수 없는 마음속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 것이다. 첫 책 <나를 견디는 시간>엔 ‘살 만하지 않은 날들’을 견뎌낸 그의 고백이 담겼다. 지난해에도 에세이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를 펴냈다. ‘조용하고 할 말 많은 내향인의 은밀한 자기돌봄’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이제 그의 꿈은 할머니 편집자다. 그리고 꾸준히 쓰는 삶이다. “40대 편집자가 5%밖에 안 된다는 통계를 본 적 있어요. 올해 마흔이 돼서인지 위기감이 커요. 저는 책을 만드는 실무 자체가 좋거든요. 현장에서 원고 붙들고 오랫동안 일하고 싶어요. 작가로서는 꾸준히 쓰려해요. 지금처럼 글로 마음을 돌보면서, 그렇게 쭉 써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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