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접을까? 진짜 관둘까!?’ 딴딴해진 고민이 돌멩이처럼 머릿속을 굴러다녔다. 마산 바다가 보이는 카페로 들어가는 순간,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 한 통.
-김연수 기자님이죠? 기자협회보 김달아 기자입니다.
-네. 저를 무슨 일로?….
-뉴스 비평 콘텐츠 ‘뉴비자’를 주제로 글을 써 주실 수 있을까요?
“뉴비자 시청자 여러분, 시즌2로 찾아뵙겠습니다”라는 멘트를 하는 내 모습까지 상상하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일단은 뉴비자가 무엇인지 소개해야겠다.
뉴비자는 ‘뉴스 비평 자신 있게’ 줄임말이다. 뉴미디어부 소속인 본인과 편집부에서 일하는 이원재 기자가 매주 ‘나쁜 뉴스’를 비평하는 영상·기사 콘텐츠다. 매주 목요일 유튜브 경남도민일보 채널에 영상을 공개한다. 2021년 9월11일 회심의 예고편을 시작으로 2022년 6월11일까지 총 28편을 제작했다. 방송 시간은 회당 20분 내외로 그간 총방송 시간은 600분에 이른다. 지난해 11월 말부터는 매주 금요일 지면·온라인 기사도 연재하고 있다.
뉴비자 모토는 이렇다. ‘좋은 뉴스를 생산하는 만큼 나쁜 뉴스를 가려내는 것도 중요하다.’ 단언컨대 단 한주도 부담스럽지 않은 적이 없었다. 동종 업계 종사자를 까는(?) 일이 쉬울 리 없다. 늘 ‘나는 떳떳한가’라는 생각이 맴돈다. 게다가 나는 본래 성정이 조용조용하고, 조심성이 많은 편이다. 혹여나 타사 기자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 늘 노심초사한다. 영상 조회수에 신경을 쓰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많이 보면 부담스러운데’라는 생각도 하니까 참 아리송하다.
‘나쁜 뉴스’만 콕 찍어 비평하게 된 이유는 명확하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 받는 언론이 방종에 빠졌다는 문제의식에 구성원이 공감대를 이뤘다. 관성에 물들지 않은 20대 기자들이 언론이 조회수를 뽑는 갖가지 기술과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의견을 기사에 교묘하게 심는 방법 등을 독자에게 차분하게 설명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또 한편으로는 방송하면서 느끼게 될 무거운 부담감이 자사 보도를 성찰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기억에 남는 주제로는 ‘경남 사람에게는 먼…그놈의 여의도 면적’과 ‘여경 무용론 띄우는 속내는’을 꼽는다. ‘여의도 면적’은 서울 중심 표현이다. 1980년대 중반 신문에도 등장하는 어구니까 유서가 깊다고 해야 할까. 최근 경남 밀양에서 산불이 났을 때도 ‘여의도 면적 2배가 불탔다’ ‘피해 면적은 서울 면적의 4분의 1 이상’ 같은 표현이 언론에 등장했다. 정작 피해 당사자인 밀양지역 주민은 가늠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뉴비자 팀은 이처럼 묵은 기사 쓰기 관행을 독자가 비판적으로 읽고 곱씹어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여경 무용론 띄우기 속내는’을 꼽은 이유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층간소음 갈등으로 흉기 난동이 벌어진 현장에서 경찰이 이탈한 사건이 있었다. 11월17일 최초 보도에서는 경찰의 안일한 대응을 꼬집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인 18일 본질은 흐려지고 ‘여경 무용론’이라는 키워드가 언론 기사 제목에 등장했다. 뉴비자 팀은 ‘또다시 불거진 여경 무용론’, ‘“여경 뽑을수록 피해 보는 건 국민들”’과 같은 기사를 사례로 꼽았다. 며칠 뒤인 23일에는 남경도 현장을 벗어났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런데도 몇몇 언론은 ‘여경’ 키워드를 엮는 시도를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25일 ‘“한국 경찰과 다르네”…식칼 휘두르던 남성 맨손으로 제압한 중국 여경’과 같은 기사를 꼽을 수 있다. 뉴비자 팀 이원재 기자는 방송에서 “언론이 잘못된 프레임을 바로잡을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어쩌면 언론이 포기하지 못한 것은 여경 무용론보다 혐오에 기반한 높은 조회 수일지도 모른다”고 평가했다.
여경 혐오를 조장한 대부분 기사는 종이신문에는 싣지 않는 온라인용이다. ‘신문 기사 따로 있고, 온라인 기사 따로 있나?’ 뉴비자 방송을 9개월간 하면서 느낀 가장 큰 문제의식이다. 신문 편집 업무를 몇 년간 하다가 뉴미디어부에 와서 보니 더 절실히 느낀다. 신문에 들어가는 기사는 토씨 하나에도 공을 들이는데, 온라인용 원고는 별다른 검토 과정 없이도 곧바로 보도하기 일쑤다. 온라인 시대에 신문을 봐야 하는 이유를 이런 기이한 방식으로 유지하려는 것은 아닐 테다. 뉴비자 팀으로서는 계속해서 지적할 수밖에 없다.
방송을 꾸려나가는 데 현실적인 고충도 있다. 뉴미디어부 인력이 딱 3명, 부서장을 빼면 실무자는 2명이다. 주5일 중 적어도 이틀은 빠듯하게 돌아간다. 편집부 이원재 기자가 기꺼이 방송에 동참해줘서 큰 도움을 받고 있지만, 방송 대본을 쓰고 출연하고 영상을 편집하고 기사도 쓰려면 쉴 틈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뉴비자 말고 다른 기획을 펼쳐볼 엄두가 안 난다. 방송을 촬영하는 화요일 아침마다 ‘그래! 시즌1은 오늘로 끝내자’라고 다짐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어찌 됐든 뉴비자를 이어온 동력은 성찰에 있다. 매주 누군가를 비판하는 일을 하다 보니 나 자신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다. 취재·편집을 하는 데 이러한 긴장감은 나를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버팀목이 됐다.
뉴비자 팀은 외롭다. 왁자지껄한 상호비평을 바라는 건 무리일까? 지난해 11월 ‘기자들 ‘언론계 엑소더스’ 가시화…그런데 대책이 없다’라는 기자협회보 기사를 읽었다. 어렵게 언론사에 입사해도 5~6년 차에 퇴사한다는 것이다. 꿈꿔온 기자상과 현실의 간극이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감한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 상호비평을 하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때로는 힙합 가수들의 디스전 같은 상호비평을 상상한다. 타사 보도에 딴지 거는 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디스전에는 비판과 동료애가 공존하는 법. 서로서로 가려운 곳을 긁어 줄 수 있다면…. 그 방식을 진지하게 혹은 유쾌하게 때로는 화끈하게 풀어가면 새로운 길이 또 보일지도 모른다. 물론 뉴비자 팀은 아직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