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세월의 녹을 벗겨내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옛 대구시립박물관 사진 한 장 남은 게 없고 기억하는 이들도 사라진 탓이었다. 주저주저 어렵게 취재를 결심했지만 시작하고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틈틈이 과거 자료를 찾고 유물 도록들을 대조하고 전문가 조언도 구하러 다녔지만 한두 달 일상 취재를 하다 다시 수첩을 펼칠 때면 어느새 머릿속이 하얘져 원점으로 돌아가는 악순환이었다.
누군가는 기억해야 역사인 것을, 여기서 그만두면 70년 전 대구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까 두려웠다. 당시 공문서를 깨알같이 채록한 아흔 살 노교수의 ‘대구시립박물관 관련 노트’, 대구시 기록관에서 마주친 ‘주인 잃은 박물관 열쇠’는 어렵사리 취재를 이어간 동력이었다
시립박물관 도난 유물에서 시작된 보도는 대구시장의 시립박물관 건립 공약 파기, 27년째 방치된 지역사 편찬, 그리고 일그러진 대구시의 역사 인식으로 이어졌다. 짧지 않았던 취재 과정 내내 확인했던 건 역사를 대하는 대구시의 빈약한 의지였다. 역사문화 정책에 대한 뚜렷한 밑그림은 찾기 힘들었던 반면 관광객을 모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이우환, 이건희, 간송 미술관 사업에는 수백, 수천억 예산을 투입할 의지를 내비치며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취재 과정에서 접한 다른 시·도의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역사에 손놓은 대구’의 현주소를 안타까워했다.
우리의 보도가 대구라는 ‘오래된 우물’의 과거와 현재를 풍성하게 하는 작은 계기가 됐으면 한다. 비록 한 해 수만 명씩 대구를 떠나는 현실이지만 ‘오래된 우물’에서 솟아난 우리 동네 역사 이야기들이 지금 대구에 사는 이, 대구를 떠난 이와 떠날 이들의 머릿속에 알알이 들어가 박혀 대구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고, 대구를 그리워해 다시 찾을 수 있게 마음의 씨앗이 됐으면 좋겠다.
허점 많고 부족한 취재였지만 큰 상을 주신 한국기자협회와 심사위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취재를 이끌어 주신 정병훈, 김명수 선배께도 고맙고 함께 취재한 권준범, 이상호, 김남용 기자께는 더 가치 있고 훌륭한 후속 취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