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말고… 전남 목포에 동명원이라고 있네요.”
부산 형제복지원·안산 선감학원과 같은 인권유린 시설이 전남에도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습니다. 인권유린. 현 시대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보이지만, 동명원에서는 최근까지 아주 익숙한 단어였습니다.
당시 시대를 겪어보지도, 목격하지도 않은 젊은 기자들에게 비극적인 역사를 취재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취재팀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느새 목포를 벗어나 전국으로 흩어진 피해자들을 추적하는 것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을 만나는 노력은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알려져 많은 증언을 확보했습니다. 흉터가 남아있는 머리를 보며, 탈출 후 여기저기를 떠돌며 젊음을 날려버린 이야기를 들으며 처참했던 그 시대의 잔혹한 역사를 그려나갈 수 있었습니다.
3개월 간의 끈질긴 취재 끝에 밝혀진 동명원 사건은 처참했습니다. 특히, 옛 동명원을 기억하는 한 주민이 이곳을 “집단수용소 같았다”고 했던 말은 한참이 지난 아직도 여전히 선명합니다.
또한 동명원을 비롯하여 ‘복지시설’이라는 이름 아래 가해진 인권 유린행위가 당시 전국적으로 만연했고 이를 국가가 책임지고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는 전문가 자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면 보도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지금에도, 피해자들이 넘어야 할 산은 여전합니다. 아직 후속 보도로 드러내야 할 과제들도 산적해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는 저널리즘을 지켜나가야 할 기자의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