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직무 스트레스,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현직기자 54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8.7%에 해당하는 428명이 근무 중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한다. 근무 중 어떤 상황이 트라우마를 일으켰느냐고 묻자 취재 과정뿐 아니라 기사 작성과 보도, 보도 이후 댓글·이메일 등 독자의 반응에 이르기까지, 기자라는 직업을 수행하기 위한 직무 전반이 총망라됐다. 동료 기자 10명 중 8명이, 기자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통상의 업무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정신 건강의 위기를 경험했다는 뜻이다.


새삼스럽지만 기자는 업무 강도가 높고 직무 스트레스도 많은 직업이다. 취재·보도라는 직무 특성상 살인·성폭력 등 잔인하고 충격적인 사건·사고를 자주 접하게 되고 피해자·유가족 등과 직접 맞닿아 관여하면서 정서적 소진을 겪는 일도 빈번하다. 재난 현장 등에 경찰·소방관 등과 더불어 가장 먼저 달려가 위험에 노출되는 직업이기도 하며, 보도 과정에서 소송이라는 극단적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일도 다른 직군 대비 상당히 잦은 편이다.


언론이라는 직업적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상당수 기자들이 매일 취재 계획을 올리고 정해진 시간 안에 완성된 기사를 넘겨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 속에서 긴장된 하루를 보낸다. 취재원들과의 관계에서 불쾌한 경험을 하거나 심리적 갈등을 겪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특종과 낙종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경쟁심과 열패감은 또 우리의 정신을 얼마나 좀먹는가. 특히 최근에는 불특정 온라인 뉴스 독자들이 댓글이나 이메일, 전화 등으로 기자들을 직접 위협하거나 모욕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디지털 언론 환경이 가속화 하며 새로운 직무 스트레스가 더해진 셈이다.
하지만 대부분 언론사 조직은 이런 기자들의 스트레스와 심리적 트라우마에 아직도 너무 무관심하다. 실제 조사 결과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은 428명의 동료 중 회사 조직 내 관련 기구를 통해 해결했다는 사람은 12명에 그쳤다고 한다. 트라우마를 예방하기 위해 정기적이며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기자도 고작 10명이었다. 기자의 일상 업무 자체가 트라우마 혹은 직무 스트레스와 분리될 수 없다면 체계적인 예방·관리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셈이다.


‘기자다움’을 요구하며 기자들의 트라우마를 더욱 악화시키는 언론사 조직 문화도 여전하다. 숱한 기자들이 심리적 트라우마를 상사나 동료에 털어놓았다가 ‘누구나 겪는 일’이라거나 ‘기자가 다 그런 것’이라는 대수롭지 않은 대응에 더 큰 상처를 받았다고 말한다. 혹은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지 말라’는 비판이나 ‘기자라면 마음이 더 단단해져야 한다’는 질책을 들어 이후로는 그저 침묵하기로 했다는 사람도 많다.


기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문화를 바꿔야 할 때다. 기자들의 직무 스트레스는 이미 위험 수위에 올랐다. 업무상 트라우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고, 트라우마 겪는 방법 또한 다양해지고 강도도 심해지고 있다. 잦은 악몽에 시달린다거나 트라우마를 잊기 위해 술과 약물에 기댄다는 응답이 많았다는 사실이 무척 걱정스럽다. 다행히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여성기자협회가 취재 중 트라우마 사례 및 대응 방안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겠다고 나섰다. 현장 기자들에 필요한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별도의 기구 구성을 검토하고 사전 예방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도 밝혔다. 기자들을 직접 보호해야 할 언론사들도 이 같은 변화에 힘을 보태길 강력하게 바라본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