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 심층 국제보도에 눈 떠야 할 때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말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한 직후, 각국 유수 언론사들의 움직임을 보면 그 조직의 수준이 보인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발빠르게 ‘호모 사피엔스’ 등 저작으로 국내에도 유명한 유발 하라리의 기고를 게재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평소 관계가 돈독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등 푸틴 대통령을 잘 아는 유력 인사들의 알찬 기고문을 실었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는 러시아가 아닌 미국을 비판하는 미국 학자인 존 미어샤이머와의 장문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인터뷰 질의응답은 흥미진진하다. 기자가 단순히 궁금한 것을 묻는 일방적 소통이 아니라, 인터뷰이와 날선 설전을 벌이는 쌍방 소통이라서다. 국제정치학의 대가인 미어샤이머 교수와 논쟁을 벌이는 기자의 질문은 때론 답변보다 길었고, 깊이도 갖췄다.


이런 보도 및 기고문 게재는 보여줬다. 각 사의 기동력은 물론 기자들의 수준, 취재원들과 평소에 쌓아온 네트워크 등등을 말이다. 평소의 실력이 위기의 순간에 빛났다. 이들 매체의 구독료는 결코 저렴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양질의 보도를 위해서라면, 독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을 터다.


국내 매체들의 보도 역시 선전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전황에 맞춰 기사들이 쏟아졌다. 깊이 있는 그래픽과 영상 요소 등 디지털 시대에 발맞추려 노력한 흔적도 일부 돋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자문(自問)한다. 왜 우리는 직접 유발 하라리를 인터뷰 못 하는가. 미어샤이머와 논쟁을 벌일 수 없는가. 단순히 외국어의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이미 각사마다 영어는 기본이요, 중국어까지 능통한 기자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21세기 통번역 기술의 도움을 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석학들은 버터 발음이 아니라 깊이 있는 질문을 우선할 것이다. 한국의 존재감 역시 불과 수 년 전과도 비교할 수 없다. 지구 반대편에서 ‘오징어 게임’을 시청하고, BTS 신곡을 한국 중년보다 콜롬비아 청년이 더 잘 아는, 초연결 사회다. 이런 세상을 다루는 기자들의 식견도 깊어지고 넓어져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우리 언론계에 던지는 과제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보도도 사실, 쏟아졌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전하며 말초 신경만을 자극하는 기사들이다. 구독료 없이 클릭으로 ‘영업’을 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지만, 제목 장사는 정도를 넘어섰다.


기자들만 탓할 건 아니다. 조직문화도 문제다. 국제문제 전문가는 육성하는 데 시간이 든다. 월급을 줘야하는 입장에선 시간은 곧 돈이니, 국제 전문기자를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말이 된다. 사실상 대다수의 언론사들이 국제문제 전문기자를 키우지 않고 있거나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유발 하라리와 같은 취재원을 확보하려면 우선 공부를 해야 하고,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이런 과정을 진득하게 기다려줄 만한 1진이나 부장 또는 팀장, 나아가 편집국장 혹은 보도국장이 몇이나 되겠나.


독자들의 클릭에만 집착하다가는 스스로 그 덫에 빠질 수 있음을 잊지 말자. 클릭에 목매는 세상에서 언론의 어젠다 세팅 기능은 약화한 게 사실이지만, 그게 우리 본연의 임무임을 망각해선 안 될 일이다. 언론 환경은 더 엄혹해지는 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일개 회사의 이익만을 도모하기 위해 이 직업을 택하지 않았다. 진실을 밝히고, 알리고, 지키겠다는 사명감이 우리에겐 필수다. 지금 이 시각에도 우크라이나의 무고한 시민들은 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역사부터 이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복잡다단한 지정학까지, 두루 짚어낼 수 있는 보도를 기대한다. 뉴요커도, NYT도, 가디언도 처음부터 잘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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