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세대에 무례한 대선

[언론 다시보기]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청년세대에게 참으로 무례한 대선이 한창이다. 청년정책을 토론하겠다던 후보들은 정작 생방송 내내 뻔한 다툼을 주고받느라 바빴다. 나는 순식간에 유권자 내지 주권자에서 저스트 시청자로 전락했다. 후보가 민달팽이 청년들에게 어떤 말을 건넬지 내심 기대했던 것이 초라해졌다. 대선 후보 내지 운동 전략이 우리에게 무례한 탓이다. 그리고 저 무례함은 어쩐지 익숙하다. 민달팽이유니온이 청년들을 대상으로 주거상담과 주거교육을 할 때마다 겪는 장면과도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무례함이다.


일방적으로 반말하거나, 부모를 얕잡아 부르는 것은 무례하다. 상대의 처지를 두고 협박하는 것은 무례함을 넘어 때로는 범죄다. 민달팽이유니온에서 청년주거상담을 한다는 것은 그런 무례함이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는 일상을 마주하는 일이다. 민달팽이는 어리고 빈곤하다는 이유로, 임대주택에 산다는 이유로, 세입자로 산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횡포를 겪는다.


올해 2월 한 청년은 전세임대주택에 살다가 이사를 나가는 과정에서 임대인으로부터 언어폭력을 겪고 보증금까지 떼일 위기에 처했다. 보증금을 쥐고 흔들며 퍼붓는 반말과 폭언은 당사자와 가족, 그리고 나에게까지 공포다. 그 무례함을 중재할 소위 ‘어른’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도움이 필요했지만, 전세임대를 운영하는 공공은 제 역할이 아니라고 여겼다. 당사자를 대신해 여러 차례 거절의 말을 들으며, 그래도 이 모욕감이 차라리 활동가인 나를 거쳐서 다행이라 여겼다.


또 다른 날에 한 청년은 보증금을 완전히 떼였다.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서 그 건물에 살던 청년들이 ‘임차권등기명령’을 해야 했다. 순식간에 10개 가까이 임차권이 설정됐다. 민달팽이를 찾는 청년들이 겪는 일부 임대인은 세입자로 살아가는 청년들의 목돈을 쥔 채 그들의 일상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선 잠적한다. 어쩌다 연락이 되면 적반하장이다. 무례하고 못됐다.


달팽이도 집이 있는데, 집이 없는 민달팽이는 마치 현 청년세대의 표상과도 같다. 집이 없거나, 노동소득만으로 주거비를 마련하는 것이 벅차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충분히 안전하지 않을 때 우리는 물리적인 주거불안을 느낀다. 이 불안을 보다 심화시키는 것은 바로 저 수많은 무례함이다. 당장의 주거비와 주거환경을 감내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청년에게 온갖 무례함의 무게마저 떠넘긴 채 그 누구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구조가 당연시되는 한국이다. 청년세입자들을 둘러싼 이 사회의 공기 자체가 참으로 무례하다.


어쩌면, 달팽이만을 위한 선거다. 민달팽이는 설 자리를 찾지 못했다. 대선 이후, 우리가 겪는 무례함을 이제는 규제하고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을 갖기 어렵다. 청년을 위해 주거 공약을 펼치겠다면서, 청년세대 내 격차와 청년세입자들이 겪는 권리 침해는 뒤로 밀려나 호명되지도 않는다. 민달팽이가 주거상담을 통해 만나는 현장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양상이 변하지 않고, 되레 집값 폭등과 맞물려 피해 규모마저 커지고 있음에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달팽이는 무례함을 딛고 주거권을 획득해내야 하기에 대선 밖 일상을 이어간다. 그 끝에 제 역할을 기꺼이 해낼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마땅한 사회가 올 것이라 믿고 민달팽이는 주거상담과 현장대응을 이어간다. 향후 5년을 바꾸는 방법은 공약집에는 없다. 우리의 일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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