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 재난대응 응급실 같은 조직 필요…돈·사람 절실"

KBS 재난센터 팀장 "재난은 골든타임 중요, 주7일 24시간 대응 인력·예산 턱없이 부족"

2015년 메르스, 2016년 경주 지진과 2017년 포항 지진, 2019년 고성 산불에 이어 2020년부터 2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까지. 최근 몇 년간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이 지속해서 발생하며 재난이 그야말로 일상화됐다. 잇단 재난 상황들을 겪으며 우리 사회의 재난대응 시스템은 한층 발전했고, 2014년 세월호 참사로 뼈 아픈 교훈을 얻은 언론 역시 재난보도준칙 등을 제정하는 등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진자 수 등 피해 규모를 단순 중계 보도하거나, 감염병 같은 재난 상황마저도 정파적으로 접근하는 등 한계는 여전하다.

2·18안전문화재단과 KBS가 공동 주최한 안전학술 세미나 '코로나 동행시대, 언론의 재난보도 성찰과 미래'가 지난 16일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열렸다. (유튜브 중계 화면 갈무리)

특히 재난방송 주관방송사임에도 고성 산불 당시 미온적인 대응으로 질타를 받았던 KBS는 이를 계기로 재난방송센터를 재정비한 후 지난해 기록적인 장마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비교적’ 잘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코로나19 특집 페이지와 재난포털을 통해 지역별 분포 등 각종 수치와 정보를 시각화해서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유홍식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지난 16일 2·18안전문화재단과 KBS 공동 주최로 열린 안전학술 세미나에서 ‘코로나 동반시대, 재난 보도에 대한 성찰과 대응방향’을 주제로 발제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KBS의 재난방송에 대해 “사건중계 보도방식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며 “재난방송이 계획된 고도의 방송 행위가 아니라 임기응변식 대응 보도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난보도, ‘뉴스’ 중계보다 ‘정보’ 전달이 중요”

유 교수는 “재난 보도의 1차 목적은 시청자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피해지역과 피해자의 관점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발굴해 보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난 상황시 ‘뉴스’의 중계가 아닌 ‘정보’를 제공”하고 “재난이 수습된 이후에는 피해 복구와 재발 방지를 위해 필요한 것에 초점을 맞춰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재난 뉴스의 속보 경쟁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방송뉴스를 포함한 언론의 보도는 부정적 사안에 높은 비중을 두기에 ‘부정적 속보’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속보는 정확한/전문적인 재난 뉴스/정보에 대한 시민의 주목도를 약화시키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신속한 재난뉴스보다는 정확한 재난정보의 신속 전달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밝혔다.

고성 산불로 홍역을 치른 KBS가 이후 재난방송센터를 재난미디어센터로 확대하며 최우선 원칙으로 세운 것도 ‘피해 최소화’였다. 김민철 KBS 재난미디어센터 팀장은 “불날 때 불구경 홍수 나면 홍수 구경, 사람 구경시키는 재난방송이 아니라 피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자는 뼈저린 각오를 새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KBS 구성원들의 생각보다 국민들의 눈높이는 높았다. 지난해 부산에서 폭우로 3명이 사망했을 당시 KBS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비판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 본사에서도, 부산총국에서도 “매뉴얼대로 다 했지만” 부산 시민들은 ‘건물로 비가 다 들어차는데 뉴스에서 한두 꼭지 하다 마네요’ ‘부산에서 수신료 받아가지 마라’ 등등 격렬하게 항의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 화두는 재난에서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게 됐다”고 김민철 팀장은 말했다.

그러나 “언제가 골든타임인가”를 판단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김 팀장은 “만약 부산에서 침수가 나는 상황에 많은 국민이 보는 ‘나훈아 쇼’를 생방송 중이었다면? 비는 부산에서만 오는 상황이라면 전국적으로 ‘나훈아 쇼’를 끊고 재난방송을 할 수 있을까? 여기엔 KBS 보도 쪽과 편성 쪽 등 각 부서 간 소통의 장벽도 존재해 (결정할) 시간을 지체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면서 “이 부분은 지금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재난이 주5일제도 아니고…” 24시간 대응 재난전문채널 신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8월 발표한 게 KBS에 ‘재난전문채널’ 신설 등을 골자로 한 재난방송 강화 종합계획이다. KBS 1TV와 2TV 외에 지상파다채널방송(MMS) 방식의 재난전문채널을 만들어 재난정보를 24시간 신속·정확하게 전달하도록 한다는 게 핵심이다. 쉽게 말해 갑자기 지진이나 폭우 등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굳이 정규방송을 끊지 않고 제3의 채널을 통해 재난방송을 하면 된다는 의미다. 현재 시범서비스 중이며 내년 법제화를 거쳐 2023년부터 본방송을 한다는 게 방통위 계획이다.

김민철 KBS 재난미디어센터 팀장이 'KBS 재난미디어센터' 사무실에 붙어 있는 재난방송의 원칙을 설명하고 있다. (유튜브 중계 화면 갈무리)

이 재난전문채널이 성공하기 위해선 기민성과 편성의 신축성은 물론이고 충분한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다고 김민철 팀장은 말했다. 김 팀장은 “재난이 주5일제도 아니고 주말이나 심야라고 안 나는 게 아니니 전천후로 대응할 수 있는, 응급실 같은 조직과 플랫폼을 만들어야 재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재난정보가 많은 사람에게 도달하게 할 수 있다”며 “24시간 운영이 목표가 아니라 적시에, 또는 돌발시에 대응할 수 있는, 어떤 유형의 재난이건 대응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KBS가 유튜브 뉴스 채널을 통해 재난방송 등에 대비한 ‘D-Live’ 생방송을 실험 중인데, 월~금 90분 생방송을 하는데 기자 6명이 투입된다. 이런 방송을 주 7일, 24시간 하기 위해선 더 많은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팀장은 “미국의 대표적인 상업방송 채널인 폭스는 지난 10월 폭스 웨더 채널을 런칭하며 40명을 고용했는데, 기자와 앵커 22명 중 12명이 기상학자”라고 전했다. 일본의 웨더뉴스도 진행캐스터 10명과 기상전문가 7명이 돌아가며 3시간씩 진행하고, 평상시 심야엔 자막과 그래픽을 반복해서 송출하고 있다.

김 팀장은 “재난 때 응급실처럼 돌발 대응이 가능하게 하고, 적시에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주 7일 휴일 없이 하도록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방송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인력과 예산, 물자가 투입돼야 한다”면서 “대하드라마도 나훈아 쇼도 중요하고 교양프로도 다 중요하지만, 재난미디어센터 입장에선 KBS에 이거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까?”라고 말했다.

유홍식 교수도 “재난방송의 중심은 ‘사람’과 이들의 대응능력에 있다”며 인력 보강과 이를 위한 재정 확대를 강조했다. 유 교수는 “재난전문채널이 설립된다고 지금보다 나아질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있지만, 우리 사회가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재난방송을 잘 하도록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고 비판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재난방송 주관방송사로 의무만 부과하고 도움을 안 주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재난방송 국비 지원? 그냥 받자니 찜찜하고…

그러나 예산을 어떻게 충당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또 남는다. 2020년부터 KBS는 재난방송 운영지원 명목으로 방통위로부터 25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수어방송, 재난 시 행동요령 영상 등을 제작하고 있는데, 사내에서도 ‘공영방송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국비 예산은 족쇄’라는 이견이 나온다. 김 팀장은 “국비를 받으면 정부 눈치를 보게 되고, 예산을 잘 썼는지 정부가 감시를 해야 한다. 언론사가 정부를 감시해야지 정부가 언론사를 감시하는 형태가 되면 어떻게 하냐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임필교 방통위 코로나19 재난방송대응단 과장은 “재난전문채널을 잘 하기 위해선 돈, 인력, 전문가 등 다양하게 필요한데, 이걸 국민에게 이해시키고 서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돈을 어떤 식으로 마련할지, 정부 예산으로 할지 수신료를 올릴지 하는 건 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임 과장은 “이런 (재난전문)채널이 정말 필요하다, KBS가 하면 좋겠다고 국가 전체가 필요성을 느끼고 국민적 합의가 되면 300억이든, 400억이든 큰 비용은 아닐 것”이라며 “어떤 일이든지 가만히 있으면 안 해주지 않나. 하나하나 좋은 프로그램이 나오고 하면서 같이 노력해야 할 사항인 것 같다”고 말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