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언론이 공론장 마련해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차별금지법은 2007년 정부 입법으로 처음 발의된 후 발의됐다가 폐기되기를 15년째 반복하고 있다. 의원 발의가 7차례나 이뤄졌고, 현재도 4개 법안이 계류 중이다.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 법안을 시민들은 국민청원을 통해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모아 법제사법위원회로 보냈다. 하지만 양당은 전체회의에서 청원 심사 기한을 2024년까지 연장했다. 처리를 미루는 이 결정은 회의 시작 43초 만에 나왔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여론이 71%로 대다수이지만 대선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생산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이 공정하고 충분하게 공유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민의는 최소한 공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차별을 막기 위한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치권뿐 아니라 언론도 이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 10월 초부터 한 달간 13개의 종합지와 경제지 보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4개 신문은 이 기간 차별금지법을 단 한 차례도 다루지 않았다. 그나마 보도된 기사의 대부분이 정치인들의 발언을 전하는 수준이다. 특히 대권 후보들이 어느 정도 찬성 혹은 반대에 가까운 발언을 했는지 인상비평식 보도가 많았다. 정치인의 말을 따옴표 그대로 전하는 ‘실시간 중계’는 사안을 논란 중심으로 소비하게 돼 사회적 논의가 진전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객관적 분석이나 검증을 거치지 않고 특정인의 발언을 그대로 보도하는 언론의 관행이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만 제기되는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인권의 차원에서 접근해야할 차별금지법이 ‘받아쓰기’를 할 수 있는 주제인가.


기자협회보가 10개 일간지와 9개 방송사의 2년 6개월간의 보도를 분석한 기획 시리즈 ‘누구의 목소리가 뉴스가 될까’는 소수의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좌우되는 언론 보도의 실태를 전한다. 해당 기간의 기사에서 100번 이상 인용된 발언자의 1.7%(1100명)가 전체 인용량의 49.1%를 차지하고 있었다. 언론이 자주 찾아가는 인물 역시 경제·문화·학계·기업 등 각 분야의 몇 명, 몇 곳에 집중된다. 차별의 문제를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특권을 가진 이들이다.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언론은 어떤 관점에서, 누구의 시선으로 사안을 보도하고 있는가.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한 지 올해 20주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차별금지법에 대해 “인권선진국이 되기 위해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전 세계가 차별과 배제, 혐오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하는 때, 시대의 변화에 맞는 인권 규범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언론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는 데 기여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로서 여론형성의 공적기능을 인정받는다.


차별금지법은 인권의 문제다. 언론이 주요한 의제로 다루며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법안 효과에 대한 우려나 적용 범위에 대한 반론이 있다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검증하고 보도해야 한다. 첫 번째 발의 후 14년 넘게 답보 상태를 이어가고 있는 법안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하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장이 되어야 한다. 한국보다 앞서 차별금지를 법제화한 국가들 역시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으며, 지난한 과정을 겪었다. 그러면서 진보했다.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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