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좋은 회사 왜 나왔어요?” “왜 아직 여기(충북 청주)에 있어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계희수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에겐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CJB청주방송 기자로 1년 반 정도 일하다 지난 2019년 충북 지역 인터넷신문 충북인뉴스로 옮기고, 서울 잠실에서 나고 자란 그가 지난 4월부터 언론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며 청주를 떠나지 않으니 그런 물음이 나오는 게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지역 민방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으니 출발은 산뜻했죠. 지인들 사이에서 제가 매해 연봉을 다운시키는 걸로 유명하대요(웃음). 사람들은 제가 회사와 큰 갈등을 빚어서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데스크가 충북민언련 회원 가입도 할 만큼 청주방송 선배들과 지금도 좋은 관계에요. 인생을 살면서 돈이 절대적인 만족감이나 성취감을 주진 않더라고요. 그보다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에서 많은 걸 얻는구나 깨달았어요.”
계 활동가가 속해 있는 충북민언련은 최근 큰 변화를 맞았다. 그동안 대표 한 명이 모든 업무를 해왔는데, 올해 들어 그를 포함해 젊은 활동가 3명이 합류했다. 대대적인 홈페이지 개편도 이뤄졌고 큰 프로젝트도 예고하고 있다. 이곳에서 계 활동가는 사업 기획과 진행을 주로 맡고 있다. 또 지역 연대 활동과 함께 기자 시절 젠더, 노동, 인권 문제에 주목했던 경험을 살려 젠더 이슈 토론회 패널과 여성영화제 위원 등의 외부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지난 21일 충북민언련 사무실에서 만난 계 활동가는 28일 ‘후원의 날’ 행사와 11월에 열리는 ‘언론은 노동자를 어떻게 지우고 있는가’ 기획 강좌 준비에 한창이었다.
등굣길 지하철에서 장애인 승객에게 갑질하는 공익요원을 보고 학교도 가지 않은 채 회사에 전화해 항의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계 활동가는 부조리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도와주곤 했다. 이런 “성질머리”를 가지고 그는 기자가 됐다. 성격상 아이템 하나를 물면 해결될 때까지 쫓아다녀야 하는데 한 건하면 털고 새로운 데일리 뉴스에 집중해야 하는 방송 속성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방송보다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기획기사 중심으로 다른 매체와 차별화를 두고 있었던 충북인뉴스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원 없이 기사를 썼지만, 점차 기자 역할에 한계를 느꼈다.
“기자 일을 하며 생긴 인맥, 정보력 등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들이 쌓여가잖아요. 어떤 상황을 보면 내가 조금만 하면 피해자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하지만 나는 기자니까, 어떤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되고 기록자로서 한발 뒤에서 봐야하는 게 적성에 안 맞은 거죠.”
2019년 9월 ‘스쿨 미투’ 사건 피해 학생에게 온 메일 한 통은 그를 본격적인 활동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가해 교사에 대한 형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중 법원으로부터 증인 소환장을 받은 피해 학생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할 수 없었다. 피해 학생은 1년 전 자신을 찾아왔던 기자를 기억하고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알고 있냐’고 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계 활동가는 피해 학생과 재판 준비를 시작했다. 알음이 있는 지역 네트워크에 피해 학생을 데려가 심리 상담을 받게 하고, 협박 편지 등 2차 가해에 대한 민사 소송 비용 모금 운동도 진행했다.
“처음 메일을 받고 학생이 기자에게 연락할 정도면 교육청, 학교는 뭘 하고 있는 건지 화가 나더라고요. 이 학생이 당하고 있는 2차 가해 수위도 개인이 버티기 힘든 정도였죠. 어느 순간 제가 변호사처럼 법을 공부하고, 재판 기록 뒤지고, 기자회견 준비까지 하고 있더라고요. 기사 잘 쓰는 사람들 많으니까, 기자들에게 도움 되는 자료들을 주고, 피해자들 지원해주는 활동가 업무를 하는 게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스쿨 미투 피해자 지원 활동 이후 여러 시민단체에서 러브콜을 받던 그는 평소 알던 이수희 대표와의 인연으로 충북민언련에 정착하게 됐다. 계 활동가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 함께 저널리즘을 고민했던 타 언론사 동료들은 하나둘 서울로 가버렸다. 사람들은 청주에 남아 있는 계 활동가에게 ‘왜 서울로 돌아가지 않냐’고 물어본다. 그는 여기서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지역에는 젊은 인력 한 명 한 명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말한다. 충북민언련에서 계 활동가는 새로운 흐름의 언론 운동에 집중할 생각이다.
“그동안 정치적이고 진영 위주의 언론 운동이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전환점을 맞은 것 같아요. 이제는 언론 윤리나 감수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데 지역에서는 목소리를 내는 게 부족했다고 보거든요. 서울에선 젠더 데스크 이야기가 나오지만 당장 편집·보도국에 기자들 4~5명 있는 지역 언론사에 젠더 데스크가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 기사가 아무래도 독자와 시청자의 감수성을 못 따라가는 경우가 많죠. 그런 지역 언론을 감시하는 시민단체 판도 열악하고요. 젊은 활동가들이 주축이 돼서 새로운 시대의 미디어 운동을 해보면 좋지 않을까, 이제는 기사나 프로그램에 대한 기계적인 모니터링보다 한 분야를 잡아서 예리하게 들어가 볼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