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프레임 전쟁, 사라진 공론장

[언론 다시보기] 오동재 기후변화청년모임 BigWave 운영위원

오동재 기후변화청년모임 BigWave 운영위원

지난 5년간 정치권의 주요 정쟁 대상으로 부각됐던 이슈를 꼽으라고 하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빠지지 않는다. 탈원전은 지난 대선만 해도 당시 홍준표 후보조차 공약으로 ‘신규 원전 건설 지양’을 내세울 만큼 진영 간 차이가 없었던 이슈였지만, 이제는 지지 정당에 따라 찬반의 양극단을 달리고 있다. 자연스럽게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하는 사회적 논의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


한국 언론은 이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지금도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언론의 프레임 전쟁은 계속되는 중이다. 보수 언론은 모든 이슈들을 탈원전의 문제로 끌어들여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진보 언론은 그 반대편에 있는 사실들로 논박한다.


지난달 한국전력의 전기요금 인상을 둘러싼 논쟁도 프레임 전쟁의 단면이었다. 한전의 이번 인상은 연료비 연동제에 따른 것으로, kWh당 3원(4인 가구 기준 약 1050원)이 올랐다. 발표가 나자 조선일보 등 주요 보수, 경제지들은 9월24일자 신문 1면에서 일제히 이번 요금 인상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른 청구서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나아가 1면 대부분을 할애해 “향후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누적 손실이 30년간 1067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국회 입법조사처의 분석을 보도했다.


경향, 한겨레신문 등은 반박성 보도를 냈다. 경향신문은 같은 날 사설에서 탈원전 정책은 앞으로 60년간 이어지는 장기 계획이라고 반박했고, 한겨레신문도 국내 원전 이용률이 2018년 65.9%에서 올해 상반기 73.4%로 오히려 증가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수년째 보아온 풍경이다.


문제는 기사가 이른바 ‘야마(주제)’에 갇혀 기본적인 검증조차 거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잘못된 정보가 걸러지지 않고 퍼져나간다. 앞선 중앙일보의 보도가 그런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의 한 교수는 “기본적인 경제학 원리조차 따르지 않은 치명적인 실수를 한 기사”라고 비판했다. 비용 추산에서 가장 기본적인 할인율이 고려되지 않았을뿐더러, 앞으로도 저렴해질 것으로 분석되는 재생에너지의 가격이 일절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4년간 정쟁화된 탈원전 프레임 아래서 한전의 적자,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그리고 재생에너지는 모두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폐단으로 귀결됐다. 그 과정에서 태양광과 풍력발전을 둘러싼 가짜뉴스들과 논쟁적인 보도들로 인해 재생에너지 반대 여론이 급증했다.


그래서 한국이 지금 마주한 재생에너지의 현실은 암담할 뿐이다. 지역 재생에너지 설치 민원이 급증하며 도입된 지자체 입지규제는 3년 새 50%나 늘어났다. 과도한 규제로 안 그래도 부족한 재생에너지 설치 가능 면적은 급감했다. OECD 국가 중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여전히 꼴등이다.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해결돼야 할 과제들은 앞으로도 산적해 있다. 분산형 전원 확대에 따른 인프라 확충, 전력시장 개편 등은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EU와 미국 정부는 탄소 관세로, 또 해외 기업들은 RE100(재생에너지 100%로 자사 제품 생산)으로 우리 정부와 기업들을 압박해오고 있다.


다가오는 대선과 새 정부에서도 모든 에너지 이슈들이 탈원전으로 귀결되면 우리 사회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부디 양분화된 프레임을 넘어서 에너지 전환의 새로운 공론장이 만들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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