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 먹고 소비하는 건, 아무도 연구를 안하더군요"

[기자 그 후] (31)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전 스포츠서울 기자)

스포츠서울에서 17년간 여행기자로 일했던 이우석 소장은 50세를 하루 남긴 2019년 12월31일 회사를 나와 이듬해 6월 놀고먹기연구소를 차렸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한창이던 지난 1년간에도 지자체 용역을 따내며 꾸준히 포트폴리오를 쌓았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한국관광공사 내 입주한 연구소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우석 소장.

 

이우석 소장은 바빴다. 놀고먹기연구소니까 놀고먹을 줄 알았는데, 순진한 생각이었다. 일정 조율을 위해 전화를 하는 그의 입에선 출장지가 줄줄 흘러나왔다. 이달 셋째 주에만 보령, 거제, 통영, 제천 등을 오갔다고 했다. 이 소장은 “내가 놀고먹는 게 아니라 남이 놀고먹게 해주느라 이렇게 바쁘다”며 웃으면서 말했다.


기자일 때도 별반 다르진 않았다. 1998년 스포츠서울에 입사해 2003년부터 2019년까지 17년을 레저·여행기자로 일했던 그는 항상 1년의 절반 가까이 출장을 다녔다. 연휴 빼곤 매주 1박2일, 해외라도 나가면 3박4일이나 4박5일은 기본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1박2일 취재 다녀와 원고지 40매 분량의 기사에 사진까지 마감하는 빡빡한 일상이었지만 “출세랑 맞바꿀 수 있을 정도”로 여행기자로 사는 게 즐거웠다.


40세에 회사를 그만두려 했던 마음이 10년 더 미뤄진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그는 “50세가 되어가자 처음 이 일을 맡았을 때의 벅참, 성취감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다 쓴 치약처럼 뒤가 둘둘 말려 있는” 것만 같은 기분, “물론 60세까지 아끼고 아끼면 쓸 수 있겠지만 그것보단 아예 치약을 다시 펴 새로운 걸 채워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그는 50세를 하루 남긴 2019년 12월31일 회사를 나왔다.


계획은 막연하게나마 있었다. 17년간 방방곡곡 국내외 여행을 다니며 그는 자연스레 여행업계의 성장과 정체, 후퇴를 몸소 체험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을 기획하고 마케팅을 할 회사를 만들어보자 생각했다. 계획은 우연한 기회에 구체화됐다. SNS에 퇴사 인사를 올리고, MBC 라디오PD가 섭외 전화를 걸어오며 직함을 물어보자 그의 머릿속엔 놀고먹기연구소장이 떠올랐다. 즉시 명함을 팠고 동아리처럼 운영하다 지난해 6월 놀고먹기연구소를 만들었다.


그러나 좋은 시기는 아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기승을 부리며 여행업계가 휘청거리던 때였다. 이우석 소장은 “배를 진수했는데 순풍이나 해류도 없이 그저 노만 저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거대한 해일 같은 코로나19에 배가 마치 잠수함처럼 가라앉았다. 결국 생계를 위해 기고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종합일간지 3사 고정 기고 외에 3군데서 방송 출연까지 하고 있다. 단발성 요청까지 합하면 더 많다. 그의 말을 빌리면 “기자 때보다 기사를 훨씬 더 많이 쓰고 있”다. 그는 회사를 퇴직하고 기고만 200자 원고지 1만매는 쓴 것 같다며 자신의 별명이 ‘기고만장’이라고 했다. “콘텐츠계의 다이소, 김밥천국” “퇴직 때 회사가 노트북을 뺏어가 값싼 한성 노트북을 샀는데 그 10대 값은 기고로 번 것 같다”고도 말했다.


근근한 원고료 수입에 더해 힘든 시절 속에서도 그는 지자체 용역을 따내며 꾸준히 포트폴리오를 쌓아갔다. 창원시로부터 용역을 받아 식도락 관광 가이드북인 ‘미친(味親) 여행’을 펴냈고 장흥군 물축제 이벤트 디자인, 보령시 머드축제 굿즈(goods·기획 상품) 제작 등을 했다. 이 소장은 “연구소에선 여행사 상품을 개발하는 것뿐만 아니라 관광지 운영방법, 굿즈 제작, 캐릭터 개발 등 토털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다”며 “여행사 상품의 경우 세상에 없던 여행을 만들려 한다. 예를 들어 하루 21시간 수면을 보장하는 ‘잠만 자고 오는 여행’, 그 반대로 밤새 술 먹고 노는 ‘무박 4일 클럽 앤 다이닝’ 같은 상품”이라고 말했다.


15일, 놀고먹기연구소는 창사 1주년을 맞았다. 직원 2명과 고군분투한 사이 1년이 훌쩍 지났다. 그나마 정부가 해외여행자의 격리를 면제해주는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여행안전권역)’을 본격 추진하면서 업계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전망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특히 국민적 인식 면에서 더욱 그렇다고 그는 말했다.


이 소장은 “코로나를 거치며 방역을 위해 개인의 여행은 이기주의적인 행위가 됐다. 공이 과연 사보다 중요한 것인가, 사는 공보다 덜 중요한 것인가 이 질문에 있어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그러나 코로나블루 같은 집단적 우울증을 생각하면 사는 결코 공보다 무게감이 가볍지 않다”고 했다. 이어 “대부분의 연구소는 생산을 연구한다. 휴대폰을 예로 들면 밝은 화면, 빠른 성능, 또 그 휴대폰을 만드는 인력의 효율성까지 연구한다”며 “그런데 놀고먹고 소비하는 건 아무도 연구를 하지 않는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는 게 오히려 생산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일 텐데 아직도 우리는 뭘 하고 놀지, 노는 방법을 잘 모른다. 저는 그걸 연구해 실패하지 않게, 효율적으로 노는 방법을 만들어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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