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터질 줄 알았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제약사들의 임의 제조’ 모두가 문제인 줄 알고 있었지만,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제약업계의 고질병이었습니다. ‘관행’, ‘끼리끼리’란 수식어 속에 불법은 습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확실한 뇌관을 건드려야지만, 문제를 끄집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악성 뿌리가 땅속 깊게 단단히 자리 잡은 만큼 확실한 물증으로만 캐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전 취재에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입니다.
한 번 잡힌 문제는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딸려 나왔습니다. 스모킹 건 이른바 ‘제약사 내부 문건’을 확보한 게 신의 한 수가 됐습니다. 1년여간 뿌려둔 ‘취재 덫’이 빛을 발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임의 제조’ 지시가 명확히 담긴 내부 문건을 확보한 뒤 취재에 들어가자 제약사는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문건이라는 확실한 팩트를 무기 삼아, 협회와 다른 제약사 등 다방면으로 알아보았고, 다른 제약사들의 임의 제조 정황이 담긴 내부문건 등을 추가로 확보 수 있었습니다.
뇌관을 터트린 뒤에서야 민낯을 드러낸 ‘제약사 임의 제조’는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적나라한 현실과 감독기관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의 압박 속에 식약처는 유달리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보도 당일 곧바로 문제가 된 의약품을 판매 정지를 내린 데 이어, 이틀 만에 강제수사로 전환했습니다.
불법이 관행화된 이면에는 제약사를 감독하는 식약처의 관리 부실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업계 전반의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끝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섰던 이유였습니다. ‘why’라는 의심을 나침반 삼아 구조적인 문제를 깊숙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깊게 취재한만큼 핵심을 찌를 수 있었습니다. 제약사와 식약처 간의 유착 의혹에 이어, 제도적 미비점까지 연이어 보도했고, 결국 국회, 식약처 등 관계 당국을 모두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첫 보도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어선 지금까지도 후속 제도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식약처는 중소 제약사를 점검한 데 이어, 대형 제약사에 대한 불시 점검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 몇 명은 취재기자와 긴밀히 연락하며, 제도 개선책 등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속보도가 관행이란 타성 속에 이어진 악습의 고리를 끊어내는 가위질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당장은 아플 수 있어도, 올바른 고리로 다시 연결할 수 있는 변곡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연속보도를 할 때마다 원하는 바람입니다. ‘이번만큼’은 꼭 변화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