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뉴스의 나라,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한겨레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한국은 주요20개국(G20) 중에선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기사 한 건 값이 제로에 수렴하는 국가다. 모바일 또는 기타 환경에서 기사를 읽으면서 그 기사 자체에, 직접 온전한 방식으로 구독료를 지불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공짜 점심은 없다지만 공짜 뉴스는 있는 게 21세기 대한민국이다. 독자들 탓만 할 게 아니다. 기형적 포털 시스템이 핵심이지만, 언론사들 역시 매일의 숨가쁜 사이클을 핑계로 미래 설계를 손 놓고 있는 탓도 크다.


뉴스 유료화라는 지극히 당연한 과제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또는 미션 임파서블처럼 돼버린 작금의 현실에서, 한겨레 신문이 종합일간지로서는 국내 최초로 유의미한 시도를 한다. 후원제 도입이다. 이달 17일부터 정기적 후원자를 모집, 구독자 및 광고주와는 또 다른 수익창출의 삼각 구조를 완성하겠다는 목표다. 창간 시작부터 후원의 일종이었던 국민주 신문이었던 한겨레이기에 가능한 시도라고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한겨레는 2017년에도 기사 1건 당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내는 기사 후원제를, 2019년에는 주간지 한겨레21의 후원제를 운영했다. 그러나 한겨레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한겨레신문이, 개별 콘텐츠 아닌 ‘한겨레’라는 매체 전체를 후원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건 새로운 발걸음으로 의미가 크다. 물론 한겨레 이외에도 국내 매체 중 후원제를 성공시킨 곳들은 다수다. 그러나 이들은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매체이거나, 종합 뉴스 매체라기 보다는 뉴스레터를 중심으로 하는 저널리즘 스타트업이라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번 한겨레신문의 시도는 일명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라고 불리우는 매체가 후원제 혁신을 하는 첫 시도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우려는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불었던 일명 ‘한·경·오 사태’ 당시의 기억이 아직 선연하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부 독자들의 정치적 성향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후원이 끊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한겨레를 포함해 일부 매체에 특정 정치적 성향을 띤 이들이 후원금으로 매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열린 셈이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영국 가디언이라는 성공한 선배가 있다. 가디언은 2016년 10월 디지털 후원 모델을 도입한 지 3년만에 첫 흑자를 기록했다. 영업이익 한화 기준 12억원으로 크진 않지만, 20년만의 흑자라는 점에서 가디언에겐 소중한 성과다. 영국의 저널리즘 환경은 한국만큼, 어쩌면 한국보다 경쟁적이다. 타블로이드지의 횡행 속에서 권위지로서의 품위를 지키면서도 돈까지 벌어들인다는 것은 가디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가디언은 후원제라는 무기로 어렵게 돌파를 해냈다. 한겨레뿐 아니라 한국 전체 미디어 시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불행한 것은 가디언은 한국과는 사뭇 다른 환경의, 저 멀리 바다 건너 매체라는 점이다. 현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언어)인 영어 매체라는 점도 가디언에겐 후원의 국경을 없애는 이점으로 작용한다. 한국어 매체, 거기에 부침이 심한 한국의 미디어 환경에서 후원제라는 아직은 미약한 뿌리가 어떻게 지반을 뚫고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후원제 도입 후에도 광고 수입이 없다면 생존이 어려운 게 엄혹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용기를 내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도태되는 수밖에 없다. 디지털 풍랑에 후원제라는 돛을 올려낸 한겨레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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