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북한경제의 시장화(marketization)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북한경제가 계획경제와 시장경제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 마지막 전환 경제?>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북한에서 시장이 발달하면서 신흥 상인계층인 ‘돈주’가 역할을 확장하고 있고, 유통뿐만 아니라 대규모 건설 사업에도 자금을 대고 있다고 평가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에서 돈주에게 주택 입사증을 맡기고 일종의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사례가 나타났고, 삼지연 개발과 여명거리 건설 같은 국가적 건설사업에 자금을 댄 돈주를 관영매체를 통해 공개적으로 치하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돈주의 역할이 공인된 셈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초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국방성, 군 총정치국과 총참모부, 노동당 등 특수기관들이 알짜배기 기업을 독식하며 자기 배만 불리는 병폐를 ‘단위특수화’라고 지칭하며 “반당적, 반국가적, 반인민적 행위”라고 호되게 비판한 것도 북한경제의 시장화와 무관치 않다.
김 위원장은 최근 경제운영의 주체가 내각이라며 경제의 중앙집권적 통제를 강조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 김덕훈 내각총리는 지난 2월25일 기업의 독자적인 생산 및 경영 활동을 법으로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선군정치가 위기 탈출의 해법으로 부각되면서 경제권력의 상당 부분이 특수기관에 넘어갔는데, 이제는 그 권력을 내각과 시장에 돌려놓고 내각의 기획력과 시장의 역할 확대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김정은 시대 경제운용 방향이다.
북한의 ‘하이브리드’ 체제로의 전환은 경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북한 내 고위인사에 대한 징계와 문책이 숙청이나 공개처형 같은 살벌한 방식이 아니라 좌천이나 경질, 순환보직 같은 온건한 방식으로 바뀐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2013년 장성택 처형과 2015년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공개처형 같은 일은 사라졌다. 작년 8월 내각총리직에서 해임된 김재룡이 지난 1월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위원에 이름을 올렸고 핵심 요직인 조직지도부장 자리를 꿰찬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책성 경질을 하더라도 아예 제거하는 대신 인재 풀에 남겨두고 적절한 기회에 재기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런데 김일성 주석 시대부터 행해졌던 자아비판이 여전히 국가 운영의 주요 수단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최근 김 위원장이 부실한 경제정책을 질책하자 건설, 농업, 광업 등 각 분야의 간부들이 노동신문을 통해 앞다퉈 반성문을 내놨다.
고위급 징계의 온건화와 자아비판 문화의 공존은 북한 체제 전반이 하이브리드 상태에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북한이 하이브리드 자동차에서 전기차로 진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시장경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했으면서도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의 예를 보더라도 그렇다.
하지만 하이브리드 체제로 전환하는 데에도 외부와의 협력이 필요한 법이다. 여기에 남북이 손잡을 기회가 있는지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