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기자생활 마치고, 9급 공무원으로 인생 2막

[기자 그 후] (25) 김찬석 부산시 사회복지 공무원(전 국제신문 기자)

“기자 생활하면서도 보람 있었던 적이 많지만 어쩐지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은 정말 행복해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찬석 전 국제신문 기자의 얼굴은 환했다. 기자든 공무원이든 일은 일이기에 힘들지 않을까, 했던 생각이 무색하게 그의 눈은 인터뷰 내내 반짝반짝 빛났다.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듯했다.  


지난 1988년 국제신문에 입사해 2016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만 28년을 기자로 살았던 김찬석 전 기자는 사회복지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2017년 공무원 시험에 도전, 결국 합격했다. 그는 현재 부산시 사상구 모라3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현재 부산시 사상구 모라3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파악하고, 복지 혜택을 받더라도 그 수준이 적절한지 검토 후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하는 것이 그의 주요 업무다. 수급자 비율이 40%에 육박하는 모라3동에서 그는 한 달에 약 200여 가구를 살피고 있다. 김 전 기자는 “제가 하는 일의 70%가 가정 방문이다. 일차적으로 전화 상담을 하고 좀 이상하다 싶으면 방문을 한다”며 “댁에 가서 청소 상태나 식량 등을 확인하고 냉장고, 세탁기 등 기본적인 생필품이 갖춰져 있는지 등을 보고 있다. 그 외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분들이나 아동학대 가정 등을 조사하는 것도 저의 일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14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9급 공무원이 된 전직 신문사 국장’으로 출연해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1988년 국제신문에 입사해 2016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만 28년을 기자로 살다, 늦깎이 공무원이 된 그의 사연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 모은 것이다. 김 전 기자는 “행정고시 2차를 치르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던 때, 후배가 국제신문 복간 사실을 알리며 시험을 쳐보라 권유해 전혀 준비 없이 기자가 됐다”며 “거기서 정년을 채울 거라고 생각 못 했다. 솔직한 이야기로 입사 후 1~2년 정도는 퇴근하고 행시 공부를 했는데 당시엔 빨간 날도 없이 주 6일, 7일을 일했던 때라 공부가 쉽지 않아 결국 마음을 접었다”고 말했다.     


김찬석 전 기자가 주민센터에서 매주 1회 진행하는 내부사례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그렇게 기자로서 달려간 삶, 당연히 정년퇴직을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그의 선택지에 공무원은 없었다. 제2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다 공인중개사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좀 더 남을 위해 살자는 생각으로 사회복지사를 본격 준비할 뿐이었다. 다만 그의 나이 때문일까, 서류를 60여 군데 넣었는데도 아무도 그를 불러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2017년 9월, 나이 제한이 없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2월 중순 시험까지 3개월 보름 정도 남은 때였다.    


김 전 기자는 “1차 필수과목이 국어, 한국사, 영어였는데 영어는 놓은 지도 오래됐고 하도 어렵다는 얘길 들어서 그냥 포기했다”며 “국어야 신문기자 생활 하면서 간단한 교열도 볼 정도였으니 된다고 생각했고, 선택인 행정학과 사회는 공인중개사 공부나 예전에 행시 준비했을 때 기억이 있어 부담감이 적었다”고 말했다. “운이 좋게도” 그는 19명을 뽑는 사회복지 직렬에서 딱 19번째로 합격했다. 김 전 기자는 “30년 전엔 그렇게 기를 쓰고 공부해도 안 되던 게 됐으니 운이었던 것 같다”며 “아마 연초에 공고 사실을 알았다면 못 했을 거다. 젊은 친구들만큼 체력과 집중력이 없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김찬석 전 기자는 지난달 14일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 '9급 공무원이 된 전직 신문사 국장'으로 출연한 그는 늦깎이 공무원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내 시청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그렇게 그는 지난해 4월8일 사상구청 생활보장과에서 첫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방송에서도 밝혔듯 엑셀과 한글 파일 구분조차 못하던 그에게 수시로 공문을 작성하고 서류를 검토하는 일은 너무나 힘겨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슴이 벌렁벌렁하길” 두어 달,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 다만 상사의 만류, 주민센터에 가면 나을 것이라는 권유에 7월, 지금의 행정복지센터에서 공무원으로서의 새 삶을 시작했다.   


센터에선 김 전 기자가 생각했던 일을 할 수 있었다. 취재원들과 30년 가까이 소통을 했으니 수급자 가정 방문도 익숙했고, 취재 노하우가 있어서 그런지 전화 상담도 더 세밀하게 할 수 있었다. 오히려 벽을 치고 기자를 바라보던 취재원들과 달리 거부감 없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민원인들이 더 편하고 쉬울 때도 있었다. 김 전 기자는 “사람을 만나 그 분의 욕구를 파악하고 정책적으로 반영하는 과정이 기사화를 하는 과정과 거의 같아 도움이 많이 됐다”며 “다른 기자분들도 얼마든지 도전하시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다만 그는 내년 12월31일, 또 한 번의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김 전 기자는 퇴직 후를 묻는 질문에 “제3의 인생은 아직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1년 2개월간 더 많은 민원인들을 만나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제 마음이 정말 행복하게 졸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자연스럽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복지 쪽에서 더 오래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 “경력이 짧아 걱정인데, 남은 기간 열심히 공부하고 정 안 되면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치매 관련 시설을 만들면 어떨까, 아직 생각만 해보고 있습니다. 지금이 정말 행복하고 보람차서 앞으로도 복지 분야 일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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