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 엔진 장착한 조선일보, 신문·디지털 사이서 갈팡질팡

['아크 시스템' 도입 한 달]
온라인·지면 모두 잡으려 했지만
기자들 업무 늘고 돌발 오류 속출

디지털 총괄 "목표·지향점 있지만
명확히 결정 안 돼 말하기 힘들다"

조선일보가 미국 워싱턴포스트(WP)사의 ‘아크 퍼블리싱(Arc Publicing)’ 시스템을 도입한 지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아크 도입 초기, 시스템 상 다양한 오류가 발생하며 혼란을 겪었던 조선일보는 시간이 흐르면서 기자들이 시스템에 익숙해지고 도구도 여러 차례 수정되며 차츰 안정을 찾아가는 모양새다. 다만 내부에선 종이신문과 디지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조선일보 디지털 전략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언제, 어떻게 지면의 힘을 뺄 것인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디지털 적응기’ 거쳤지만 아크 도입 후 혼란
조선일보는 지난해 11월 새로운 디지털플랫폼을 구현하겠다며 WP와 아크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WP가 개발한 아크는 사진과 동영상을 자유자재로 첨부하고, 페이스북·인스타그램·유튜브 게시물을 원본 그 자체로 보여줄 수 있는 등 디지털 콘텐츠 제작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콘텐츠 관리 시스템이다. 조선일보는 “미국 시카고트리뷴, 프랑스 르파리지앵 등 세계 22국 언론사가 아크를 쓰고 있다”며 “콘텐츠 제작과 유통은 물론 AI를 활용한 데이터 저널리즘에서도 (아크가)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기대했다.



한글화를 비롯해 시스템 도입을 위한 여러 실험이 이어지는 동안 조선일보는 신문 제작에 맞춰져 있던 업무 시스템을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다. 지난 3월 말 지면 기사만 쓰던 편집국에 디지털 기사를 함께 쓰도록 주문하고, 편집국 산하에 디지털 편집팀, 디지털 기획팀과 함께 속보 대응팀인 디지털724팀을 신설했다. 디지털 총괄에디터, 뉴스 총괄에디터 등 새로운 보직을 만들고, 편집국 오전 회의는 디지털 위주로 진행하게 하는 등 체질 개선을 꾀했다. ‘디지털 적응기’로 불리는 이 기간, 신문에 최적화돼 있던 시스템과 콘텐츠, 구성원들의 마인드를 변화시키는 것이 조선일보의 주요 목표였다.


약 5개월 후인, 지난달 1일엔 드디어 아크가 실전에 도입됐다. 다만 도입 초반부터 기사나 사진이 포털에 제대로 안 뜨는 사고가 발생하고, 간단한 기사 작성 시에도 온갖 오류들이 이어져 내부에서 혼란이 초래됐다. 기사 작성과 함께 사진이나 표 등을 삽입하는 것이 전보다 어려워져 예전 도구에서 기사를 쓴 뒤 복사·붙여넣기 하는 기자들까지 생겨났다.


조선일보 A 기자는 “요즘 나오는 프로그램이 대부분 직관적인 데 반해 아크는 굉장히 번거로운 프로그램이다. ‘조선닷컴’ ‘경제부’ 등 세세한 기본 값을 하나하나 지정해줘야 하고, 지면기사는 경제부를 클릭하면 경제 1면인지, 2면인지까지 선택해야 하는 등 쓸데없는 옵션이 너무 많다”며 “심지어 출고 예정 시간을 클릭하지 않으면 기사 검색이 안 되는 등 당장 치명적인 문제로 연결된다. 영어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홍길동(이름 예시)’으로 검색하면 기사가 안 나오고 ‘길동’이나 ‘길동 홍’으로 치면 기사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A 기자는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익숙해질 문제지만 익숙해지기까지 너무 많은 수고를 필요로 한다”며 “오류에 대한 대비도 부족하고, 준비가 덜 돼 있는 상태에서 아크를 맞이한 느낌”이라고 했다.   


기자들의 불만에 결국 노조와 디지털전략실은 ‘아크 안정화 비상회의’를 마련하고, 지난달 8일 첫 회의를 가졌다. 우진형 디지털전략실장은 이 자리에서 기술적 준비 부족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고, 같은 날 기자들에 22페이지 분량의 아크 매뉴얼이 배포됐다. 노조와 디지털전략실은 지금까지도 주에 한 차례 정기회의를 갖고 도구 안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시스템에 적응하더라도 비전과 방향 없어 답답
여러 오류에도 불구하고 아크라는 도구를 잘만 활용하면 효율적으로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기자들도 있다. 기사 작성 외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할 수 있는 ‘아크 브로드캐스팅’ 등의 기능을 활용하면 독창적인 콘텐츠 제작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B 기자는 “입력할 게 하나에서 열 개로 늘어나 불편하긴 한데, 동영상이나 링크 등은 예전보다 붙이기 더 편해졌다”며 “사실 아크의 장점은 간편함이 아니라 어떤 기사가 잘 팔리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인 것 같다. 다만 일선 기자들은 정작 제대로 독자 데이터를 볼 수가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도구의 불편함보다 더 큰 문제는 이 비싼 걸 들여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없다는 것”이라며 “마스터플랜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등 지금껏 디지털 혁신을 기치로 내걸었던 언론사에선 CMS 개발과 함께 편집국 이원화 방식의 조직개편을 단행하는 등 신문에서 디지털로 무게중심을 이동하는 행보를 보여 왔다. 반면 조선일보는 아크를 선보이면서도 종이신문과 디지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신문과 디지털을 단순히 통합하는 것을 넘어, 신문의 외연을 확장해 디지털에서도 저널리즘의 가치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 “이제는 종이신문 퍼스트나 디지털 퍼스트 같은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온라인과 지면 모두 고품질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선 그만큼 기자들의 업무 부담이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근로 환경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지난달 11일자 조선일보 노보에선 한 기자가 “두 마리 토끼 잡으려다 토끼가 도망가는 것은 물론이요, 토끼 잡는 사냥꾼(기자)마저 도망갈 판이다. 회사는 온라인과 지면 중에서 무게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말하고, 그 대답이 온라인이라면 지면 제작 부담을 확 낮춰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에선 아크 도입 이후에도 여전히 편집국이 지면 위주로 돌아가고 있고, 디지털 기사를 하찮게 여기는 풍토가 존재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게다가 좋은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고민 없이 PV(조회 수)와 UV(방문자 수)로만 성과를 측정해 내부에선 ‘조선 통신사’라는 자조 섞인 평도 들려오고 있다. 조선일보 C 기자는 “워낙 올드 미디어에 오래 몸담았던 사람들이라 시스템 하나 바꾼다고 문화까지 획기적으로 변하지는 않는 것 같다”며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런 때일수록 아크라는 도구를 이용해 무엇을 할지, 조직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윗선에서 비전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에서도 향후 방향을 논의 중이다. 안덕기 조선일보 디지털 총괄에디터는 “목표와 지향점이 있으나 아직 명확하게 결정되지 않아 말씀드리기가 힘들다. 계속해서 내부 논의 중”이라며 “다만 조선일보의 경우 신문이 갖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쉽사리 디지털로 움직이기 힘들다. 이제 혼란을 겨우 수습한 단계고, 아마 (무게중심을 옮기더라도) 타사보다 좀 더 천천히 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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