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속보랍시고 내보내니 저 인간이 기고만장하지.” 지난 3일 한국경제신문 <[속보] 전광훈 “대통령이 저를 전광훈씨로 지칭한 것은 모욕”>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통상적으로 기사 제목에 ‘속보’가 달리면 재난이나 재해, 사건 사고 등을 대중에게 긴급하게 알리는 보도라고 인지하지만, 해당 기사의 내용이 긴급하게 알릴 사안인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이날 전광훈 목사의 기자회견을 보도한 언론사 가운데 한국경제와 뉴스1은 전 목사의 발언을 담은 기사 제목에 ‘속보’를 달아 보도했다.
최근 속보로 다룰만한 내용이 아닌데도 제목에 속보를 붙이는 ‘속보 남발’ 문제가 포털 뉴스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속보’ 말머리를 통해 클릭을 유도하고, 포털 랭킹뉴스에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7일까지 네이버에서 종합일간지 9개, 경제지 8개 언론사를 대상으로 ‘[속보]’를 검색해 제목에 속보를 단 보도량을 조사한 결과 경향신문 27건, 국민일보 79건, 동아일보 4건, 서울신문 63건, 세계일보 49건, 조선일보 52건, 중앙일보 42건, 한겨레 7건, 한국일보 76건, 매일경제 148건, 머니투데이 165건, 서울경제 125건, 아시아경제 268건, 이데일리 70건, 파이낸셜뉴스 128건, 한국경제 599건, 헤럴드경제 124건이었다.
대부분은 코로나19, 태풍 경보 관련 기사였지만,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SNS 게시글, 성명서 내용 등도 포함돼 있었다. 6일 국민일보 <[속보] 이재명, 선별지원 결국 수용… “불만·갈등 최소화되길”>, 2일 머니투데이 <[속보]전광훈 “문재인 대통령 사과 안하면 한 달 후 순교 각오”>, 2일 조선일보 <[속보]靑 “전광훈씨, 적반하장도 정도가 있어야” 강력 비판>, 7일 한국경제 <[속보] 재검표 예고에 민경욱 “단순 계수 방식은 거부”> 등이다.
기자들은 현재 포털 사이트가 “속보 홍수 상태”라고 토로했다. 일간지 A 기자는 “코로나19 관련 뉴스로 최근 속보가 많아지긴 했다. 종종 이게 왜 속보인지 갸우뚱하게 만드는 기사도 발견한다”며 “방역 당국의 코로나19 신규 확진 발표같이 최소한 기사 제목으로 내용 전부가 이해될 수 있는 게 속보의 기준이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경제지 차장급 B 기자는 “지금도 보면(지난 7일 오후4시) 정치 섹션에서 네이버 많이 본 뉴스 1등부터 10등까지 대부분이 제목에 속보를 단 기사들이다. 모두 문재인 대통령의 재난지원금 관련 멘트 하나를 보도한건데 굳이 일일이 속보를 달 필요가 있나 싶다”며 “속보라면서 분량이 5~6매가 넘어가는 기사도 많다. 예전에는 1보, 2보, 상보, 종합 등 속보 체계가 데스크 나름의 객관적 판단과 기준으로 이뤄졌지만, 이제는 기자 임의로 속보를 달고 있다. 속보 형식에서도 게이트키핑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네이버 뉴스 AI 알고리즘(AiRS 추천뉴스)에 걸리기 위해 기자들이 기사 제목에 속보를 다는 경향도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B 기자는 “기자들 사이에선 제목에 속보를 명시하면 네이버 뉴스 알고리즘이 기사를 메인에 ‘픽’한다는 얘기가 있다. 추천뉴스에 기사가 나오면 결국 기사 클릭 수가 많이 나오고, 네이버 랭킹뉴스에 뜰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라고 했다.
네이버 뉴스 측은 속보 제목이 추천뉴스 알고리즘에 뜬다는 건 “낭설”이라고 못 박았다. 네이버 뉴스 관계자는 “AiRS는 개인별로 다르게 뉴스를 추천하는 알고리즘이기 때문에 반드시 속보가 추천뉴스에 뜬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속보가 타 언론사 기사 대비 빨리 올라오는 거라 체감상 많이 본 뉴스에 잘 올라간다고 보일 수 있다. ‘카더라’인건데 실제로 기자들도 그렇게 확신해 문의가 오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어 “네이버 뉴스 속보 섹션에는 언론사별로 하루에 제한된 개수의 기사만 넣을 수 있다. 그 범위가 넘어가면 언론사가 제목에 속보를 달아 보도하는 건데 이를 제재할 근거는 없다”고 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