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소년.’ 고경태 한겨레신문 오피니언 부국장이 고양시 백석초등학교 4학년4반 노규진 군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지난 4월 고 부국장이 쓴 칼럼 <너 아직도 신문 보니?>가 맺어줬다. 칼럼에서 그는 종이신문 구독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을 ‘웃프게’ 써내려갔다. 그런데 얼마 뒤 규진 군이 “나 아직도 신문 본다”며 이메일을 보내왔다. 자신이 신문 보는 사진까지 첨부해서 말이다.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종이신문을 읽는다는 이 소년에게 고 부국장은 특별한 선물을 선사했다. <저널소년 노규진>. 규진 군만을 위해 쓴 지난 2일자 칼럼이다. 고 부국장은 규진 군과 주고받은 이메일, 전화통화 내용을 담으며 “비현실적 모델”, “희귀한 특수 독자” 등의 표현으로 “주류에 역행해온” 소년을 격려했다.
이토록 비현실적인 독자가 궁금해 지난 6일 규진 군을 찾아갔다. 약속시간이 되자 규진 군은 아파트 1층 현관까지 달려 나와 맞아주었다. 친구들과 뛰어노는 게 즐겁고 맛있는 것 특히 ‘아웃백’을 좋아하는 영락없는 11살 아이의 모습이다.
집 거실엔 TV 대신 책이 빽빽하게 꽂힌 책장과 널찍한 테이블이 자리잡고 있었다. 규진 군은 여기서 아침마다 종이신문을 탐닉한다. 매번 30분에서 1시간 정도인데 어쩔 땐 학교 갈 시간에 늦을 정도로 신문에 빠지곤 한다.
“신문에서 정보를 습득하고 정세를 살펴볼 수 있잖아요. 1면에는 중요한 뉴스가 있고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면, 미래&과학, 애니멀피플은 후반부에 있기 때문에 끝까지 보는 거죠.”
종이신문 읽기 4년차다운 똑 부러진 대답이다. 다음 답변은 아이의 나이를 의심하게 했다. “(고 부국장이) 저를 완전히 신문지면에 도배해주셨어요. 글을 너무 잘 써주셔서 감사해요. 호기심으로 한 건데 그렇게 해주시니까 완전 좋았죠. 일종의 성취감이랄까요. 세계를 낚은 기분이에요.”
옆에 있던 엄마 박원영씨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신문체를 따라 해서인지 아이 말투가 문어체예요. 어른들이랑 대화할 때도 거침이 없어요. 채식주의 ‘비건’이 주제로 나오면 아이는 미국 국무부 부장관 ‘스티븐 비건’을 이야기해요. 신문에서 본 지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요.”
규진 군이 신문을 보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다. 다만 2010년 태어날 때부터 집에 신문이 있었고, 한글을 깨우친 7살 무렵부터 자연스레 신문을 읽었다. 규진 군의 누나가 태어난 2005년, 엄마아빠는 딸의 탄생을 기념해 “아이가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주자”는 의미로 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이 가족에게 종이신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엄마 박원영씨는 “보통 집안에 신문이 있으면 아이들도 당연히 볼 것 같다. 규진이가 특별한 경우는 아닌데 고경태 선생님이 재미있게 잘 써주셨다”고 했다.
엄마의 말에 규진 군이 반론을 제기했다. 요즘 종이신문을 구독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친구들의 부모님도 대부분 온라인으로 기사를 본다는 거다. 발언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인터넷으로 언제 어디서나 자기가 좋아하는 기사만 읽을 수 있는데 구독료를 내고 많은 지면을 번거로이 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뉴욕타임스 같은 신문이 없어진다고 할 만큼 종이신문의 미래가 없다고 하잖아요. 신문 구독료보다 전기세가 더 싸니까 구독을 안 하죠.”
더 나아가 종이신문이 살아남을 방안까지 제시했다. 위기지만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응원과 함께였다. “신문은 지금 상황이 어떻다 정보를 주지만 이러해야 한다고 알려주진 않아요. 정보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고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면 좋겠어요. 단단하면 부러진다고 하니까요. 신문사도 유연해져야 해요. 인터넷 유료화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하든가 돈을 낼 만한 기사를 보여줘야죠. 특히 교육부 기사는 ‘내가 학생이라면’ 생각해보고 썼으면 좋겠어요.”
규진 군의 꿈은 파일럿이다. 이런 인재를 항공업계에 뺏길 생각을 하니 벌써 속이 쓰리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