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 언론이 필요한 세상

[기고] 크리스티안 아만푸어 CNN 수석 국제 앵커

CNN이 창사 40주년을 맞아 크리스티안 아만푸어(Christiane Amanpour) 수석 국제 앵커의 글을 기자협회보에 보내왔다. 아만푸어 기자는 유네스코(UNESCO) 언론자유 및 언론인 안전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편집자주>

대학을 갓 졸업한 후 큰 성공을 이룰 발판을 찾고 있던 나는 당시 작은 신생 언론사였던 CNN에 입사했다. 테드 터너(Ted Turner)가 ‘케이블 뉴스 네트워크(Cable News Network, CNN)’를 선보인 지 3년 정도 된 시점이었다. 그때는 내가 평생 CNN에 몸담을 줄 몰랐고, CNN이 세계 최고의 뉴스 네트워크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해외특파원으로서 나의 첫 임무는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했던 1990년에 찾아왔다. 걸프전은 CNN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다. 당시에 CNN을 제외하고 24시간 뉴스를 내보내는 방송국은 전무했다. 이라크를 상대로 ‘사막의 폭풍 작전’이 개시됐을 때, CNN은 바그다드에서 생방송이 가능한 유일한 방송국이었다.


연합군의 공격 초기, 나는 항공모함에 승선해 군함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을 보았고, 연합군의 관점에서 사건을 취재했다. 이후 바그다드에서 이라크의 입장을 취재하면서 이전에 발사된 미사일이 어디로 떨어졌는지 볼 수 있었다. 걸프전 취재 과정에서 나는 처음으로 낯설고 극단적인 환경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종군기자는 말 그대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환경에 처해있는 많은 이들과 함께한다.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적응해야 했으며 당장 눈앞에 있는 임무에 집중해야 했다.


나에게 커다란 전환점이 됐던 순간을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다음 임무였던 보스니아 전쟁 취재 시절을 선택하겠다. 정말 어렵고, 힘들고, 위험하고, 끔찍한 경험이었다. 취재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인종학살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교전규칙도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주요 군사 강대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는 마치 체념하듯 보스니아 전쟁 개입이 무의미하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본 현실은 분명히 달랐다. 침략자가 누구인지는 자명했고, 세상에 알려야 마땅한 이야기를 간직한 무수히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언론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스레브레니차 대학살 등 집단학살의 참상을 밝혀내면서 보스니아 전쟁의 판도가 바뀌었다.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지속적으로 드러나자 연합국들도 더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연합국들의 개입으로 전쟁은 종식됐다.


보스니아 전쟁을 계기로 나는 중립적인 시각보다 진실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인종 대학살을 자행한 가해자와 피해자를 도덕적 또는 사실적 측면에서 동등한 관점에서 보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언론인은 중립적이어야 하지만, 진실을 전달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발칸반도에서 발생한 이 전쟁은 분쟁상황 속에서 언론인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 놓았다. 언론인들이 목표물이 된 것이다. 내 동료이자 명석하고 용감한 카메라 기자였던 마가렛 모스(Margaret Moth)는 보스니아에서 저격수가 쏜 총에 얼굴을 맞았다.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으나 부상이 심각했다. 마가렛이 타고 있던 차량에는 ‘TV’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표시돼 있었지만 저격수는 마가렛이 언론인이라는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사건은 당시 상황은 물론이고 비정한 시대의 시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언론인을 향한 공격은 분명 가장 안타까운 변화이다. 시리아 분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언론인들이 처한 위험은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일부 언론인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다. 최근에는 언론에 대한 공격이 여러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날카로운 질문을 ‘불쾌한’ 질문으로, 불편한 진실을 ‘가짜’로 몰아붙이는 행위가 주류 정치인과 독재자 모두에게서 목격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신체적 공격이든 정신적 공격이든 언론인에 대한 공격은 우리 모두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이다.


SNS 시대가 도래하면서 진실과 거짓이 동일한 플랫폼에 공존하게 됐다. 이로 인해 언론에 대한 신뢰가 추락함과 동시에 어떤 뉴스가 객관적인지 확실치 않아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CNN 설립 40년을 맞아 나는 우리의 역할, 특히 현 시국에서 우리가 맡은 역할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시련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진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계기가 됐다. 이 세상에는 언론이 필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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